제2552호 2019년 7월 21일
가톨릭부산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김현 안셀모 신부 / 언양성당 주임
 

   우리 사회는 때늦은 개화기와 일제의 강제지배, 한국전쟁과 같은 격동기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너무나도 헐벗고 굶주린 생활 등을 오랫동안 지속해왔습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잘 살아 보자”는 기치 아래, 오로지 ‘개발’과 ‘발전’이라는 ‘국가 주도적 성장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좀 덜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꿈은 이루어졌고, 바라던 세상은 도래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십니까? 평안하십니까?
   그토록 바라던 ‘의·식·주’가 다 갖추어졌음에도, 우리 삶의 만족도와 질은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교통은 발달하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지만, 이웃과의 거리는 더 멀어졌습니다. 과학기술은 발전하고 생활은 더 편리해졌지만, 오히려 삶은 더 바쁘고 분주해졌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고도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즉, “뭣이 중헌디?”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든 화학비료가 아니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농부들처럼(야고 5, 7 참조) 하느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삶 아니겠습니까? 마르타처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주님의 계명을 삶의 잣대로 삼아, 바르고 착한 마음과 인내로써 이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갖추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세상 걱정에 빠지지 말고 재물의 유혹에 짓눌리지 마라.”(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해」 44장 3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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