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5호 2018년 11월 18일
가톨릭부산
주님 저는 가난하고 불쌍하오니…. (시편 86, 1)

주님 저는 가난하고 불쌍하오니…. (시편 86, 1)
 

윤승식 신부 / 청학성당 주임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주님, 귀를 기울이시어 제게 응답하소서. 가련하고 불쌍한 이 몸입니다.”라고 말한다. 왕인데 스스로 불쌍하고 가난하다니. 그는 하느님 앞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시편 86장을 통해 고백한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가난하고 불쌍할 수밖에 없으며, 종말에 오시는 ‘사람의 아들’이 선택하고 모아주시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2016년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셨다.
   가난은 어려움에 부닥친 모든 인간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경제적 빈곤만이 아닌 인간실존의 궁핍을 뜻하는 말이다. 가난했던 보릿고개의 6~70년대에 비해 경제적 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지고 생산과 소득 총량이 증가했으나 계층 격차는 놀라울 만큼 벌어졌고, 빈익빈 부익부로 표현되는 양극화는 삶을 비참과 불행에 구겨 넣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을 통해 가난한 사람의 비참함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간직한 자녀가 되는 길임을 말씀하셨다. 가난의 비참함(misera)에 우리의 마음(cordia,심장)이 더해지면 자비(misericordia)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죄지어 벌거벗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내어주시지만,(창세 3,21)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속옷마저 빼앗았다.(요한 19,23~24) 세상은 가난과 빈곤에 약탈을 일삼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심장이 되고,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지닌 자녀가 된다.
   교황께서는 “이제 자비의 희년은 폐막되었고 성문은 닫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자비의 문은 계속해서 활짝 열려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자비와 비참』 16, 2016년 11월) 이제 우리가 자비의 마음으로 항상, 즉시, 기쁘게 우리의 사랑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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