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1호 2018년 3월 25일
가톨릭부산
십자가라는 신비
십자가라는 신비

손태성 신부 / 장유성당 주임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부터 성주간에 들어선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성주간을 시작도 하지 못할 것이요 운 좋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특별한 은총을 입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성주간을 잘 시작하는 제일 중요한 태도는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묻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내 삶과 많이 관계될수록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간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수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스도에게 일어나는 핵심사건인 십자가라는 것은 많은 신자들에게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신자들이 우리 신앙의 깊은 가치를 경험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십자가를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십자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 신비로만 남는다. 감히 깨달을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거나 자신의 삶의 체험으로 파악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삶이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둠인 줄 모르고, 자신의 인생이 십자가 짐의 연속인 줄도 모른다. 내 인생은 항상 벗어나야 될 것으로 부정당하고 있기에 어둠과 십자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더구나 그것만이 내 부활의 길임을 깨닫지 못한다. 또한 자신에게 충분한 십자가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십자가를 찾는다. 내 삶은 충분히 어둡고 괴로웠기에 내 삶 안에도 부활이 주어져 있음을 모른다. 마음에 들거나 말거나 내 삶인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신의 삶을 남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십자가 주위를 계속 겉돌고 있다.
  성주간에 우리는 수난에서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를 통과하려 한다.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꼴 보기 싫은 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은총을 진심으로 청하는 것에서부터 위대한 파스카의 여정은 시작된다. 그 여정의 끝에서 늘 내 안에 계시는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도무지 십자가처럼 거룩하게 보이지 않아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내 인생의 부끄럽고 허접한 십자가를 그분께서 함께 짊어지고 계셨음을 깨닫는 날, 십자가라는 신비는 그렇게 편안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나에게 이해될 것이고 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시편 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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