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7호 2016년 8월 28일
가톨릭부산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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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사도 요한 신부 / 지산고등학교 교목

  오늘 복음 중에 예수님께서는“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1)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겸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겸손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감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면서 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몰지각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겸손은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울아버지 울어머니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되는 것 딱 한가지 그건 겸손이라네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조영남“겸손은 힘들어”중

  생후 네 살이면 표현된다는 공감하는 능력이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옅어진다고 하니‘육체의 성장과 영혼의 성숙을 함께 이룬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행동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하나뿐인 아들을 다시 살려주십니다.(루카
7, 11 참조) 그녀의 슬픔을 너무나도 잘 아셨기에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에 대한 연민이 필요합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상관없다고 하기보다‘나 역시도’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공감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대신 겪으신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공감한다면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그 슬픔을 나누어야 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공감한다면 그들을 매도하거나 조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래된 경기침체 탓으로 삶이 팍팍해져 타인의 아픔을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겸손해질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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