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6호 2016년 8월 21일
가톨릭부산
좁은 문을 지나려면…

좁은 문을 지나려면…

김남수 마태오 신부 / 다대성당 주임

  대학에서 원하는 학생은 다섯 명인데, 스물다섯 명이 지원했습니다.
  경쟁률이 어떻게 됩니까? 5:1.
  일자리는 하나인데, 지원자는 열 명입니다. 경쟁률 10:1.
  허락된 자리는 적은데, 그 자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경쟁률은 치솟기 마련입니다. 입학, 취직, 내 집 마련. 이 모든 것을‘좁은 문’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이를 통과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주일 미사 안 빠지고, 묵주기도 열심히 하고, 봉사 한두 가지 하면 가뿐하게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1억 중에 구원의 자리는 몇이고, 내가 과연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구원을 남과 경쟁해서 얻어야 하는 합격증이나 자격증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나의 고통과 악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면, 이는 당연히 남보다 내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같은 성당에 다니면서 활동하고 기도하지만, 구원이 아픔을 낫게 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면 다른 형제, 자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우선 내가 그 혜택을 누려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절하게 청하는 구원은‘~으로부터 벗어남’을 넘어서‘~과 함께 함’입니다. 즉 고통과 악습으로부터 벗어남을 넘어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꼭 나이어야만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만의 하느님일 수 없고, 믿는 이들의 하느님이시고, 심지어는 믿지 않는 이들과도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더 부단히 자신을 살피고 주변을 둘러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는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자신의 생각과 몸은 낮추고, 이웃에 대한 마음과 사랑은 넓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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