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7호 2016년 6월 19일
가톨릭부산
동상이몽(同床異夢)

동상이몽(同床異夢)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 / 복산성당 주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세례자 요한, 엘리야, 혹은 옛 예언자들 중의 한 분”이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물었다면 누구라고 대답했을까요? 석가모니, 공자, 단군, 위대한 성현 중의 한 분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이든, 엘리야이든, 옛 예언자 중에 한 분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군중들이었지요. 절실하게 그분을 믿을 필요도 없었고, 구세주라고까지 고백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올리브 가지를 꺾어서 환대했고, 레드 카펫까지는 아닐지라도, 겉옷을 벗어 융숭하게 맞이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시오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할 때는, 쓰레기 버리듯, 그렇게 그분을 버렸지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지요. 당신만이 나를 구원해주실 수 있으신 분,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절대적인 분, 구세주’라고. 그러나 베드로의 그리스도는 힘세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였을 뿐,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수난을 겪는 그리스도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이 물음에“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대답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경천애인(敬天愛人)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밥으로 내어놓아야 한다고 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저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라는 말로 오만가지 불평, 불만을 쏟아 내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말했을까요?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자신들의 삶을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하고, 때로는 부귀영화를 과감하게 버리게 하고, 때로는 목숨까지도 내어 걸게 하는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투덜거리며 떠났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면서 제자들에게도 물으셨지요.“자,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저들처럼 나를 떠나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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