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3호 2016년 5월 22일
가톨릭부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권동성 폰시아노 신부 / 부곡성당 주임

 ‘삼위일체’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계신다’는 말로 흔히 풀이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는 부활 체험 후 제자들이 고백한‘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보호자이신 성령’께서‘하느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 안에 계신지에 대한 교회의 오랜 성찰의 고백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말하는 신앙 언어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신비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일화가 알려주듯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내적 신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신비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삼위일체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핵심적인 신비이며, 오직 하느님께서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당신을 계시해 주심으로써, 이 신비를 깨닫게 해줄 수 있다.’(261항)고 설명합니다. 즉 삼위일체 신비는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계시’는 하느님이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것이지만, 우리(인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삼위일체 신비를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집니다.‘나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임마누엘)을 믿고 의식하는가?’‘하느님의 함께 하심’은 신앙의 출발점이자 가장 바탕이 되는 고백입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 함께 하심을 일깨워주었고, 예수님께서는“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 4),“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고 우리 안에 계심(요한 14, 17)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가끔(?) 잊곤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우리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먼저 십자성호를 그으십시오. 십자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과 만남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만의 능력과 노력의 결실보다 성삼의 이름으로, 성삼의 이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실이 더 크고 풍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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