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6호 2026년 9월 20일
가톨릭부산
순교, 자신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


김덕헌 베드로 신부

오륜대순교자성지성당 전례담당


   ‘순교’라는 말은 그리스어 마르튀스(μάρτυς)에서 유래한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증인, 증언하는 사람’이다. 신약성경에서 마르튀스는 ‘죽은 사람’만을 뜻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을 증언하는 이들이었다. 이후 이 증언이 박해와 죽음을 동반하게 되면서 증언을 뜻하는 마르튀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은 증인’이라는 뜻으로 점차 굳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박해 시대의 우리 신앙 선조들은 순교를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로서 ‘위주치명(爲主致命)’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순교자들을 ‘치명자’로 불렀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박해가 사라진 오늘날,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하거나 위협하는 요소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순교는 과거의 사건일 뿐, 오늘날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나 가치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을 위협하는 것들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 생명과 몸의 도구화, 교회 안의 영적 세속주의, 디지털 문화의 확산, 극단적 개인주의, 소비주의와 성과주의 등은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대신하는 자리에 놓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신앙인들은 ‘하느님 없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로 대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며 신앙의 가치를 증언하고 하느님께서 살아계심을 드러내야 한다. 증언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오늘날에도 ‘순교’는 여전히 유효한 신앙적 가치인 것이다.


   1925년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 시복식 당시 서울, 대구, 원산 교구의 주교들이 공포한 글에는 “매일 매일을 하느님의 자녀로 잘 살고 선종하면 그것이 우리가 치명에 이르는 길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2014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미사가 거행되었는데,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돌보고 평화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의 순교”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순교의 의미를 ‘피 흘림’에 한정하지 않고, ‘사랑의 실천과 이를 통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의 의미로 범위를 확장하며, 현대적 순교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제시한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분들이 어떤 동기와 목적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서 무엇을 ‘증언’했는지에 주목했으면 한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가치를 드러내며 ‘오늘날의 순교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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