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5호 2026년 9월 13일
가톨릭부산
먼저 용서받은 사람


조성윤 요셉 신부

메리놀병원 행정부원장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용서해 보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인이라면 용서해야 하는데 나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 라며 자신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오늘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무조건 용서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어지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어떤 종이 임금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종이 자비를 청하자 임금은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빚을 용서받은 종은 자신에게 작은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빚을 갚으라고 다그칩니다. 결국 이 종의 문제는 자기가 받은 용서를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수없이 부족했고 같은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고해성사를 보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또 넘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내가 착하고 마음이 넓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잘못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럴 때 잠시 시선을 돌려 나 자신과 하느님 사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용서받으며 살아왔는가.’ 물론 용서한다고 해서 상처가 바로 사라지거나 잘못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주님, 제가 받은 자비를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자비로 저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다른 이의 허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조금씩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보다 내가 하느님께 받은 용서를 먼저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그 자비가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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