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야고보 신부
우리농살리기 담당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 10,37)
사제 성화의 날을 하루 앞두고 도보 성지순례 후 미사 전에 동기 신부가 제게 물었습니다. “네가 하는 일, 있는 곳이 너에게 잘 맞나?” “맞고, 안 맞고가 있나 교회 사람이 교회 필요한 곳에 있는 거지. 내가 있는 곳에서 만나는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길 바라지.” 그러자 동기는 “너는 고장 난 시계처럼 한 번씩 옳은 이야기를 한데이.” 그랬습니다. “그래 고장 나 있으면 하루 한 번은 맞겠지...” 동기는 “아니, 하루 두 번은 맞는다.” 그랬습니다.
복음 안에서 제게 묻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더 너머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힘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서 우리를 늘 사랑하고 돌보고 계신다는 믿음으로부터 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인용한 요한 23세 교황님의 글이 있습니다. 그분이 교황님이 되기 전 사제였을 때 몇 년만 더하면 완성될 일을 눈앞에 두고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때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글을 남기셨습니다. “제가 어디 있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대리자인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님께서 저를 어디로 보내시든지 저는 감사하고 기뻐할 따름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아무도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계획이 먼저이고, 내 감정이 먼저이고 또 당장 눈앞의 이익을 먼저 찾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또 기울기 쉬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른다 했던 베드로 사도가 죽기까지 주님을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오로 사도가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먼 거리를 다니며 전도할 수 있었던 이유의 근간도, 자신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신다는 확신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가까운 주일인 오늘을 교황 주일로 보냅니다. 레오 교황님께서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더 사랑하고 또 행복하시길 기도하며, 신자분들께도 주님의 사랑과 위로를 건네며, 제가 좋아하는 기도로 강론을 마무리합니다.
주님, 당신 안에 저의 모든 희망이 있사오니, 저를 비추시어 당신을 알고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제 안의 어떤 좋은 것도 있을 수 없사오니, 병든 곳 고치시고, 멍든 곳 어루만져 주소서. 당신께서 저의 주님, 저의 유일한 스승이오니 비추시고 이끄시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