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0호 2026년 3월 29일
가톨릭부산
다시 보게, 눈을 뜨게


윤정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신학원장


   사순절의 막바지에 배치된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부터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거행하는 한 주간은 교회 전례의 중심을 이루는 거룩한 주간이라고 하여 ‘성주간’이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기념하며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복음은“온 도성이 술렁”(마태 21,10)거린다고 전하며 또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마태 21,8)고 전합니다. 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지만, 교회는 이 입성을 예수님의 수난의 시작으로 보고 미사 중에는 긴 수난기를 봉독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시아의 환영과 메시아의 수난을 동시에 전하는 이 주일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공관(共觀) 복음은 의도적으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예리코의 눈먼 사람’(마태 20,29-34; 마르 10,46-52; 루카 18,35-43) 이야기를 배치하면서, 이 눈먼 사람의 입을 통하여 성주간에 일어날 일을 “다시 볼 수 있게”(마르 10,51; 루카 10,41) 혹은 “눈을 뜨게”(마태 20,33) 해 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성주간에 일어나는 구원의 사건이 주님이 죽어서 슬펐다가, 다시 부활해서 기쁜 ‘조울증’의 증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의 ‘최후의 계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존이 중심이 되어 전쟁마저 불사하는 오늘, 사랑 때문에 죄인들의 발을 씻기며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이나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고통받는 사랑’이 무기력하게 느껴집니다. 성주간을 지내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특별한 은총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이 은총은 성주간의 전례를 거행하는 것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른 이의 발을 씻으며, 그분과 함께 자신을 내어주는 삶, 곧 자발적인 ‘고통받는 사랑’으로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수난과 영광의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그분과 함께 들어갑시다. 이곳에서 그분이 겪은 마지막 유혹과 갈등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신앙’을 간직하는 거룩한 성주간이 되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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