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9호 2026년 3월 22일
가톨릭부산
결자해지, 그게 나였구나.

서진영 미카엘 신부

병영성당 주임


   눈이 아릴 정도로 햇살이 빛나는 어느 여름. 빨래 말리기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마침 여름 신앙 학교를 마친 뒤라 주인 잃은 수건들을 빨아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건들을 널다 보니 건조대에 자리가 부족했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성전 뒤편 은행나무에 새로운 빨랫줄을 묶었습니다. 바람에 날릴까 촘촘하게 집게까지 정성껏 집어 두었지요. 기분 좋은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어느 겨울 같은 자리에 서서 모처럼 옛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나간 시간만큼 빠른 것은 없지요. 스무 살, 신학교 1학년이었던 제가 부제품을 받고 사제서품을 준비하며, 활기찼던 그 여름의 추억에 잠겨 성전 뒤편을 서성이다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걸어둔 빨랫줄이었습니다. 주홍색 나일론이 얼마나 질기고 좋은지 10년이 되어가도 빛은 바랬지만 여전히 잘 걸려 있었습니다. 다만 눈길이 줄을 따라 묶인 나무둥치에 닿는 순간 크게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묶어둔 그 줄 때문에 나무둥치가 온전히 자라지 못해 생장의 숨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나의 부주의함이 그 오랜 기간 이 나무를 힘들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참 편하게 지냈구나, 바로 옆에 살며 몇백 몇천일을 지나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구나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묶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푸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나무둥치에 패인 상흔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말 못 하는 생명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래서 이렇게 무심했다고 변명을 해야 할지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한여름의 눈부신 태양처럼 지나간 추억도 있지만, 아직도 빛바랜 빨랫줄 마냥 어딘가 남아 있을 아픈 기억도 있겠지요. 님이 받은 고통은 모른 채 그냥 할 말 했을 뿐이고, 할 바를 다했다고 돌아선 일이 숱하게 있겠지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라자로에게 이리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수많은 인연으로 묶이고, 묶고 사는 우리 혹은 자신에게 뻔한 말 하나 합니다.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마음에 묶어두고 여태껏 풀지 못하고, 혹은 풀지 않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남아야 풀 생각이 들까. 다들 알아서 풀며 살겠지라고 *‘지팔지꼰’하고 있지는 않나? 주님은 돌을 치워 문을 여시고, 풀어 주어 가라 하시는데, 못난 제자는 여태껏 묶고 삽니다.


  따사로운 은총의 햇살로 이 음습한 마음도 뽀송하게 말려 주시길 빌어 봅니다.


*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의 줄임말로,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으로 스스로 인생을 힘들게 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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