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2호 2025년 12월 14일
가톨릭부산
자비롭고 선한 사람

손지호
베드로 신부
해양사목 담당

   대림은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맞을까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만나야 할지를 말씀해 주십시다. 광야에 나간 이유는 갈대를 보기 위해서나,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언자를 보기 위함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를 넘어서서 예언자들이 전하는 바로 그 말씀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성전에 나아온 이유는 바로 그 말씀을 듣고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기다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줄 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또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의 바람과 욕심을 채워줄 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나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뿐입니다.

   대림 제3주일은 자선 주일이기도 합니다. 자선하면 제일 먼저 적당히 기부하는 것을 자선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지만 자선은 무언가를 내어놓은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신 말씀처럼 되어가기입니다. 우리가 본성으로 자비롭고 선한 사람이 되고, 단순히 적당하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행동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있는 여러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이 넘쳐 흘러나오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참된 자선은 분노하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자신을 비워내고 참아내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두 렙톤에 담긴 사랑을 칭찬하셨습니다. 바오로는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들은 자선의 행위가 자칫 자기중심의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우리가 무엇보다 자비롭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참된 자선은 나눔을 통해 내가 더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물질을 나누는 자선을 넘어서 좀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길 빕니다.

강론

제2864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
제2863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
제2862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
제2861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
제2860호
2025년 3월 9일
가톨릭부산
제2858호
2025년 2월 23일
가톨릭부산
제2857호
2025년 2월 16일
가톨릭부산
제2855호
2025년 2월 2일
가톨릭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