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3호 2025년 10월 12일
가톨릭부산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

한종민 야누아리오 신부
장산성당 주임
 
   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들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모든 치유 이야기가 그러하듯 루카 복음서도 하나의 구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 형식을 파괴하는 한 단어가 보입니다. “스승님”이라는 호칭입니다. 이 스승님은 ‘에피스타테스’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주님의 제자들이 그분을 부를 때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나병 환자들이 주님을 “예수님”, “스승님”하고 부릅니다. 그들이 주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주님의 제자처럼 그분을 찾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간청합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병 환자들의 청원에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그 느낌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한 제자의 재회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그분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재회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염(殮)도 하지 못한 채 무덤에 모신 그분을 찾아갑니다. 혼자라도 그분 주검을 닦아드리고자 고요한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무덤의 돌은 치워져 있고, 그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그분을 ‘정원지기’로 여기고, ‘선생님’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마리아야!”하고 그녀를 부릅니다. 그러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응답합니다. 
 
   “라뿌니!”
 
   다시 오늘 복음으로 갑니다. 나병 환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그분을 ‘스승님’하고 부르는 것을 본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분 제자처럼 그분을 그렇게 부릅니다. 주님은 “스승님”하고 부르는 뜻밖의 소리에 뒤돌아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분은 그들이 무엇을 청하는지 이미 느낍니다. 그래서 모세의 법에 따라 그들을 사제에게 보냅니다. 치유 사실을 확증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주님께 돌아옵니다. 유다인과 원수지간의 사마리아 출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만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을 찾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치유 이야기 안에 주님을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부활하신 주님 이야기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재회 이야기를 담고 있듯이 말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느낌 안에서 그분 현존을 깨닫습니다. 그 느낌은 포근합니다. 따뜻합니다. 자비를 느끼게 됩니다. 그 느낌은 위로를 줍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 속에 잠기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그 주님을 만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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