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순교자 조석빈·조석증 형제 묘소 이장

작성자 가톨릭부산
작성일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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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0일(목) 순교자 조석빈·조석증 형제의 묘소의 파묘 예식이 총대리 신호철 주교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예식은 교령 및 약사 낭독으로 시작해 이장 동의서 서명 및 실무위원단 선서, 신호철 주교의 시삽 및 유해 발굴 후 유해 확인 순으로 진행되었다.

   순교자 조석빈·조석증 형제 묘소는 강서구 생곡동에 자리했으나 교회나 순교자 후손의 소유지가 아닌 곳에 위치해 신자들의 순례와 참배가 쉽지 않고 묘소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순교자 묘소를 보다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신자들이 쉽게 찾아 기도할 수 있도록 이장을 추진하였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9월 15일(화) 정하상바오로영성관 관내로 안장했으며, 안장 예식은 교구장 손삼석 주교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순교자 조석빈·조석증 형제의 순교 및 장사에 관한 약사>


조석빈은 1825년, 조석증은 1834년에 김해 지역에서 묘우당 조이극의 6대손으로 부친 조대연의 둘째와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형제의 천주교 입교 시기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868년 무진년 박해 때 가락면 상덕리 편도 마을(현 부산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포조들에게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압송되었으며 관헌들의 고문과 회유를 물리치고 참수형을 받아 김해읍 외장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먼저 형 석빈이 참수당한 이후, 동생 석증은 회유와 협박으로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형님의 목에 십자가 꽃이 피었다.”라고 외치며 자신도 참수해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도 참수되어 형제가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이후 순교자 형제는 사학죄인으로 문중에서 반대하였기에 선산에 매장되지 못하였습니다. 순교자의 시신을 안장한 것은 배씨 가문이었는데, 배문한 도미니코 신부의 증조부인 배정문이 자신의 집 뒤편 언덕에 두 형제의 시신을 묻어 주고 큰 돌을 두 개씩 표식으로 얹어 두었습니다. 이후 배씨 가문에서 봉분을 만들고 지금까지 4대에 걸쳐 묘를 관리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