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경향잡지에 연재하고 있는 교부들의 신앙내용입니다. 

침묵

김현 안셀모 신부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말의 홍수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를 위한 유익하고 참 된 말이 넘쳐나면 좋을 텐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이익만을 위한 말 아닌 말’, ‘궤변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다 보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궤변의 시대, 마스크로 강제로 입을 가려야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말없는 말침묵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는 좋은 기회의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0-BC500)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이름 없는 시인 박노해(박해받는 노동자들의 해방)말하는 것은 어느새 쉽게 배워버린다.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박노해, 걷는 독서, 느린걸음 2021)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침묵은 신에 대한 경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침묵할 줄 아는 모든 인간은 신의 아들딸이 된다... 기도는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 침묵과 들음으로 변화되며, 인간이 침묵함으로써 신은 이야기하게 된다.”라며, 침묵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위대한 서방의 4대 교부(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에로니무스, 대 그레고리우스)중의 한 분이셨던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4-397) 역시 성직자의 의무De officiis ministrorum을 통해 침묵의 참된 의미와 방법에 대해서 우리에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호에서는 지난 호에 다룬 ’()에 이어서 성직자의 의무를 통해 암브로시우스가 추구하였던 침묵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340년 독일의 트리어에서 태어난 뒤, 부친을 여의고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 짧은 변호사 생활을 한 후,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밀라노의 주교가 사망하게 되자, 밀라노 교우들의 적극적인 염원에 힘입어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주교로 추대되게 됩니다. 하지만, 암브로시우스는 주교임명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황제(발렌티니아누스 1)의 권고에 따라 세례를 받고 이틀 뒤, 결국 주교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세례조차 받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주교가 되어 사제단과 교회 공동체의 수장이 되니 참으로 망막했을 것입니다. 그 심경과 각오가 성직자의 의무에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법정과 관직에서 낚여와 사제직을 맡게 되었는데, 나 자신이 배우지도 않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기도 전에 먼저 가르치기 시작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먼저 배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쳐야만 합니다.(1,4)

 

그리고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형제 공동체(사제단)를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익히고 행해야 할 것이 침묵임을 밝힙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침묵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 받을 것이다.”(마태 12,37 참조)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침묵함으로써 더욱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데, 말함으로써 단죄의 위험을 서둘러 맞닥뜨려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나는 많은 이가 말을 함으로써 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침묵으로 그리 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침묵할 줄 아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침묵할 줄 모르면서 말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데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므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1,5)

 

그 어떤 성인도 말의 더러움에서 입을 지킬 수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침묵으로 죄짓지 않는 법을 스스로 세웠습니다. 말하면서는 거의 피할 수 없었을 죄를 침묵으로써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1,6)

 

그런 다음, 우리가 침묵해야 할 때와 그에 따른 결과와 이로움을 알려줍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자, 부추기는 자, 성가시게 구는 자, 사치나 욕정의 충동질로 꼬드기는 자는 누구든 경계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모욕하고, 들볶고, 폭력으로 유인하고, 말다툼에 불러들이는 그때가 바로 우리가 침묵을 실천해야할 때이며, 벙어리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선동하고 모욕하는 자는 죄인이며, 그 죄인은 우리가 자신과 비슷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대가 침묵을 지키고 못 들은 체한다면 원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할 것입니다. “너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느냐? 배짱이 있으면 말해 봐. 그러나 감히 말하지 못하니 너는 벙어리야. 내가 네 혀를 뽑아버렸기 때문이지.” 이때 그대가 침묵을 지킨다면 원수는 더욱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패배하고 비웃음거리가 되고 하찮아지고 조롱당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대꾸한다면 원수는 똑같은 놈을 찾아냈으니 자신이 우월해졌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침묵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 사람을 모욕했지만, 이 사람은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그대가 모욕을 되갚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둘 다 헐뜯어대는 구나.” 둘 다 단죄 받고, 아무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원수의 관심사는 화나게 만들어 내가 그에게 비슷한 것을 말하고, 비슷한 것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못 들은 체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선한양심의 열매를 간직하고, 오만한 범죄자들보다는 선한 이들의 판단에 맡기며, 자기 품행의 품격으로 만족하는 것은 의인의 몫입니다. 이는 자기 선행에는 침묵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선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거짓에 동요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증언보다 다른 사람의 모욕에 더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겸손도 지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욕에 곧바로 동요하는 사람은 그런 모욕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동안, 스스로 그런 모욕을 받아 마땅한 자로 비치게 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모욕을 무시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사람보다 더 낫습니다. (1,17-22)

다윗은 모든 이에게 계속 침묵한 것이 아니라 화를 부추기는 적대자에게 침묵했고, 충동질하는 죄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는 허망한 말을 하고 잔머리를 굴리는 자들의 말을 귀머거리인 양 듣지 않았고, 벙어리인 양 자신의 입을 그들에게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 제된 말로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올리고, 성경이 봉독될 때 이것으로 존경을 표하고, 부모는 존경을 받습니다.(1,34-35)

 

이처럼 침묵은 지혜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우리 역시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이르기까지 침묵한다.”(집회 20,7)는 성경말씀처럼, 침묵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헤아려 주님의 때를 마련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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