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 8 19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2019년 대한민국 국민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둘로 나누어보면, 하나는 잘 사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또 하나는 못 사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둘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나자렛 예수의 말씀들은 어제도 오늘도 선포되고 있다. 잘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예수의 말씀들이 아주 잘 먹혀 들어가는 것 같다. 개신교, 천주교 할것 없이 온갖 대형교회들이 성황을 이룬다. 이에 반해 못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있던 신도들마저도 냉담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부적응으로 말미암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교회나 성당의 건물들은 돈이 없어서 재건축은 꿈도 못꾸고 있다.

       잘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부자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선금을 듬뿍 낼 수도 있고, 온갖 피정과 기도모임, 세미나에 참석은 물론 원한다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가난한 이들보다 더 쉽게,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못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생계에 쪼들리는 가난한 이들이다. 그들은 주일미사는 물론 교회의 모임이나 봉사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때때로는 어쩔 수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거슬러 살아야 할 때도 많다. 주어진 삶의 찌질한 조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라는 것을 짓고 살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고해소 앞에 서는 것조차도 힘들어 한다. 그들은 남보다 더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교회 안에서 마저 소외되어 대접받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까지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부자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우월감과 자기정당성의 확신에 차 있는 그 젊은이가 자기환상을 깨고 마음속에 초월적이고 지고한 선을 향해 마음의 눈을 뜰 것을 종용하셨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의 말씀은 이 부자청년에게는 틀림없이 가혹한 요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과 재산에 얽매인, 끝없는 인간의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예수와 같은 운명을 나눌 것을 제자가 되는 첫째 조건으로 예수는 요구하고 있다.

‘맘몬’이란 확실히 ‘돈’ 이상의 존재임엔 틀림이 없다. 맘몬이란 인간의 내면에 무섭게 살아 있는 교활한 세력이요, 그것과 결탁한다면 세상의 온갖 행복,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전을 보장받으리라는 ‘악의 신비’에 자리잡은 어둠의 세력이다. 예수의 유혹 이야기에서 나오는 돈과 명예, 그리고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일체의 소유욕, 지식과 지위, 권력, 재능 그 모든 물질적 정신적 소유의 세계를 일컫는 것이 바로 맘몬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허상을 신봉케 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가리게 하는 ‘인간의 우상’이 바로 맘몬이다.

()는 하느님의 축복이지만 많은 이웃이 고통을 당하고, 굶주릴 때 그들을 외면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축적할 때 그것은 ‘피’가 된다. “만일 누가 가난하다면 다른 누군가가 더 차지했거나, 물려받았기 때문이고, 더 가진 이 몫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전까지는 도둑질한 물건으로 남는다”고 교회의 교부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큼 하느님과 이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그 책임이란 진정한 포기와 나눔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의 그 ‘강요된 가난’이 인류의 죄라고 한다면,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은 감히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회의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걸었던 길이 바로 이러한 가난의 길이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 누가 이 길을 그리 쉽게 자기 힘으로 갈 수 있을까? 오직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절대 사랑에 신뢰하는 길, 하느님의 뜻만을 찾았던 그 ‘나자렛 예수의 길’을 누가 감히 갈 수 있을까? 그 길은 어쩌면, 결코 인간만의 힘으로는 걸어 갈수 없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은총이 함께 해야만 가능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근심하는 빛으로 예수를 등지고 떠났던 부자청년, 가진 것이 많아서 버리고 떠나기가 더 어려웠던 그 청년의 뒷모습을 잠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어쩌면 나의 뒷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이 시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잠시 씁쓸해진다.

그러면서도 다시 희망하고, 다시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언젠가는, 어느 날인가는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재화와 정신적 소유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축복과 성사’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고, 새 하늘, 새 땅이 올 것이라고. 그래, 그러면, 그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얼해야 할까?

우리는 8월의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이제 곧 두 주가 지나면 9월이다. 2주간 동안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이 물음에 답해보는 시간을 자주 자주 가지고 싶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이 물음에 한번 답해보는 2주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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