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뭐예요?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부활은 그저 2천년 전, 유다의 한 젊은이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왔다는 식의,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한 종교적인 장치 혹은 해답 같은 것도 아닙니다. 부활 이야기는 단순히 예수님 믿다가 죽은 사람은 이다음에 부활해서 천당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떤 이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활신앙은 허무를 달래기 위한 진정제나, 신경 안정제도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부활이 무엇일까요?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승(聖傳)에 따르면, 첫째로 부활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물음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세례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왔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그 말씀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천하셨던 예수님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 어쩌면 처절하다 싶을 만큼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는 그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입니다.

 

둘째, 부활은 성령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 현존의 확장사건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위주로 살아 왔던 죽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죽고 후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나는 , 일어나야 하는 일을 믿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안에 사시는 »(갈라 2, 20) 바로 다름 아닌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 부활의 장소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소유주였던 무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 부활의 장소이고, 내가 살고 있는 « 지금 여기 » 부활의 장소인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감히 우리들의 부활 신앙에 힘입어 이렇게 선포할 있습니다: « 예수 하나 죽였더니, 예수 열이 나타났고, 예수 열을 죽였더니 예수 백이 나타났고, 예수 백을 죽였더니 예수 천이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부활이며, 예수께서는 나를 통하여, 나와 함께, 안에서도 부활하셨다 ».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나를 통하여, 나와 함께, 내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나에게 사랑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 삶은 바로, 스승의 사형 선고와 십자가 상의 죽음을 겪고는 도망치듯 일상으로 되돌아 가버린 제자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밥을 챙겨주는 것, 생명이 죽어가는 곳에 생명을 살리게 하는 것이요, 절망이 가득한 곳에 희망을 가져다 주는 일이지요.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