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면, 결코 순교할 수 없습니다.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해마다 9월이 되면, 순교자 성월이라고 한국교회에서는 순교자 찬가를 열심히 부르거나 순교 성지를 찾아가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자고 열성입니다. 순교자들은 쉬운 길을 버리고, 힘든 길을 스스로 택해서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목숨을 걸고 걸어간 사람들이지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분들의 신앙이 지금의 우리가 가진 신앙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것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분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분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지상에서 이미 천국을 누렸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초대 한국 교회에서 영세 받은 사람들끼리는 왕후장상과 양반 상놈이 없었지요. 저 지체 높으신 양반님네들도 최하층 사람들에게 하대가 아닌 존대를 했었고, 이름조차 없던 개똥이, 소똥이도 요셉 형제, 마리아 자매라고 불렸지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양반님네들과 밥상을 같이 했었고, 그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었지요. 양반님네들도 불가촉천민들이 천주님의 사랑 받는 아들 딸이라는 것, 그들도 자신들과 똑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사농공상과 신분제도를 국법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에 영세 받고 신자가 되는 것 자체가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행복이었지요. 거기에다 천주님을 믿다가 죽으면 하느님 나라로 가서 영복을 누린다는 교리까지 받았지요.

초대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양반 쌍놈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 바로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이미 살고 있었답니다. 그들은 천주교인이라고 붙잡혀 투옥되고 모진 고문을 당했을 때에도, 천주님을 믿고 죽으면 영복을 받으니까, 지금 겪는 힘듦을 조금만 참아내면,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믿었지요. 바로 그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용감한 순교자가 되게 했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해양 가족 여러분,

과거의 우리들의 신앙의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자랑으로 여기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삶을 본받고, 그분들의 삶을 우리도 살아내 보겠다고 어금니를 깨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다짐하면서 그 다짐을 실제 우리 삶에로 옮기려 애쓰는 것, « 환난과 핍박 중에서 순교로 믿음 지켰네. 이 믿음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순교자 믿음 본받아 끝까지 충성하리라 »는 이 노래를 온몸으로 노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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