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7)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저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넉 달 모자란 10년을 프랑스 빠리에서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매년 9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 되면, 빠리 외방 전교회의 초청으로 빠리에서 유학중이었던 모든 한국 신부들이 모였고, 빠리 외방 전교회 후원회원들과 프랑스 교회의 주교님들 그리고 빠리 가톨릭 대학 교수님들도 함께 오셔서 한국 교회에 대한 세미나도 하고, 미사도 드렸습니다. 그날만큼은 마음껏 한국교회에 대해서, 한국의 순교성인들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의 조상들이 열심해서 성인이 많으면 무엇 하나?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열심히 살아서 성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에는 우리나라의 성인들보다 더 많은 성인들이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교회 신자들보다 더 열심한 신자들이 지금의 유럽교회에 한국보다 더 많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유럽 교회에는 과거의 영광을 오늘날에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채, 과거의 영광을 한낱 관광거리로 전락시켜 버린 곳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왜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들이 많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고, 그 하느님을 삶으로 증거하고, 증언해야 할 교회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고, 그 삶을 살아내야 할 교회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고, 세상의 성공을 좇아서 살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교회가 교회다운 삶을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해마다 9월이 되면, 한국교회는 순교자성월을 의미 있게 지내보려고,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좀 더 열심한 신자로 거듭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목숨을 걸기까지 신앙에 열심이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 걸까요? 신앙선조들이 가졌던 신앙이 지금의 우리가 가진 신앙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것이어서? 그들이 배운 교리가 우리들이 배운 교리보다 훨씬 더 엄격한 것이어서? 그들이 믿었던 천주님과 우리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 다른 분이어서? 아니지요.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지상에서 이미 천국을 누렸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고 있지 못하다는 것 아닐까요?

초대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양반 쌍놈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 바로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이미 살고 있었지요. 그들은 천주교인이라고 붙잡혀 투옥되고 모진 고문을 당했을 때에도, 천주님을 믿고 죽으면 영복을 받으니까, 지금 겪는 힘듦을 조금만 참아내면,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믿었지요.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2018년 올해 9월 순교자 성월은 그 시작에서부터 마침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천국을 누려보는 한 달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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