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내일은 너(Aujourd’hui moi, demain toi)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지난 1022일부터 24일까지 23일 동안 해양사목 40주년 기념행사로 부산교구 해양가족들 36분이 함께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도 담당신부로 동참을 했지요. 성지순례를 위한 준비로 9일기도를 드렸고, 미리 구입했던 나가사키 성지순례 안내책(저자 김길수)도 모두 다 읽었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가 순례할 곳들을 미리 공부해온 덕분에, 23일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배울 꺼리, 묵상 꺼리가 풍성한 성지순례였지요.

월동 준비, 김장 준비, 등등, « 미리 준비! » 11월이 되면 우리들의 삶의 자리 곳곳에서 듣는 말들 가운데 하나지요. 선원들도 겨울을 대비해서 많은 준비들을 하지요. 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해,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고합니다.

저는 18년 전에 신부가 되고, 지금까지 장례미사를 수십 번도 넘게 주례를 했습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참 많이도 장례미사를 주례했지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중, 2003년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만 8천여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는, 한 달 동안 18번의 장례를 치룬 적도 있었답니다.

수십 번의 장례를 치루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죽음에는 두 가지의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리부터 죽음을 준비해온 사람의 죽음과 갑작스럽게 채 죽음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죽음.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나, 미리부터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나, 모두 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죽기 직전에,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한 순간 펼쳐지는 것을 본다고 해요. 그 때에 펼쳐지는 영상들 덕에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영상들 때문에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경우, 자신의 죄를 뉘우칠 시간이나,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허락되지 않지요.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지요. 한 인간의 죽음은 살아 있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교훈을 줍니다. 바로 « 오늘은 나, 내일은 너(Aujourd’hui moi, demain toi)»라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그리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주지요.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하는 11, 아니, 잘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11, 잘 사는 길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겠지요? 월동준비에 바쁜 이번 달엔 이웃의 월동준비에 손을 보태고, 마음을 보태고, 힘을 보태면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잘 살기 위한 준비, 그럭저럭 잘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분명 하느님께서 빙긋이 웃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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