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기회의 균등에서 시작됩니다.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20199월이 되면, 저도 여기 해양사목 담당신부로 발령을 받은지 3년이 됩니다. 해양사목 사무실을 방문했던 첫날, 목발을 짚고 혼자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해양사목 평신도 사도직 사목회원 몇 분들과 해양대학교 가톨릭 학생회 학생들 몇 명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지요.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 버렸습니다. 지난 3년간 비 오는 날을 빼고 매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방선을 하고, 주일에는 부산신항에 있는 선원 센터에 가서 센터를 방문하는 선원들에게 봉사하다 보면, 선원들의 남녀 성비가 터무니없을 만큼 남성위주임을 쉽게 발견합니다.

예부터 배의 이름은 여성으로 지었지만, 배에는 진수식이나, 명명식, 혹은 축복식 때에나 여성이 올라 갈 수 있었지, 배 안에서 여성이 일하고 생활하는 것은 터부시되어 왔지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선원이라는 직업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지요.

요즈음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일부 선박에서는 여성들을 고용하고, 연안 여객선이나, 크루즈 같은 곳만 아니라, 상선이나 어선에서도 여성 선원들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녀 성비를 따지면, 여성 선원들의 숫자는 남성 선원들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지요.

선원들 간의 남녀 성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남녀 간의 불평등은 우리가 피부로 느낄 만큼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여권이 많이 신장되고, 남녀평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고, 여성 상위시대라고 말들을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접어야 하는 꿈들이 더 많고, 날개를 꺾어야 하는 횟수들이 더 잦습니다.

저는 이 글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맞으면서 쓰고 있습니다. 2016722일 이전에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기억하는 날이 기념일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66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따라 축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를 하느님 자비의 증인, 주님 부활의 증인, 복음 선포자의 모범, 사도들의 사도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현대 교회에서 여성의 존엄과 새로운 복음화,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신비를 더욱 깊이 성찰하도록 요청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첫 증인이자, 부활을 처음 알린 전달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지요(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2019723. 마리아 막달레나, 왜 아직도 울고 있는가 기사 부분 인용)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은 하느님에 의해 마련되었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평등하게 존재하지요. 3년 전,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승격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존재하는 남녀 불평등의 요소들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도 남녀의 불평등은 존재하지요. 여성을 제한된 역할을 하는 존재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현실에서도 피부로 느낄 만큼 실제 현실이 그러하지요.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평등이라는 것은 첫째로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지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려면, 그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생각의 변화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지요. 시스템이 변화되어야 하지요. 선박에 여성 선원들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선박 내에 여성 선원들을 위한 공간, 예컨대 여성용 샤워실, 여성용 화장실 같은 공간들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남녀평등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우리 해양가족들 안에서도 남녀평등을 위해서 노력하고, 우리 해양사목 안에서도 남녀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도록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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