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느님의 사람을 키워내는 못자리입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세찬 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내리면, 배타고 먼바다 나간 자녀가 고생하고 있을 생각에 밤새 잠 한 숨 제대로 못 주무시는 어머니, 그리고 그의 곁에서 마른 침 삼키며, 속으로만 애 태우고,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괜찮을 거야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는 묵주알을 움켜쥐는 아버지, 태풍 소식이라도 들려올 때면, 태풍이 다 지나갈 때까지 한시도 일기예보 소리에서 귀를 떼지 못하며, 노심초사하는 아내, 해양가족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매월 셋째주 월요일 오후 2, 부산 가톨릭센터 3층에서는 해양인들과 해양가족들을 위한 미사가 봉헌됩니다. 그리고 이 미사에 참석하시는 분들 중에는 성가대원들도 계시고, 해양가족이 아닌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해양 가족분들이십니다. 해상에서 자그마한 사고라도 나면, 멍하니 하늘부터 쳐다보며, ‘제발 다친 사람 없어야 할 텐데’, ‘제발 살아 돌아와야 할 텐데하면서, 늘 마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이 미사에 참석할 때만큼은 하느님 덕분에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들 같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두려워하지 마시오”(요한 6, 20)라는 말씀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절실한 사람들이기에, 주님의 몸을 영하고, 주님과 하나되는 이 미사에서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주님으로부터 받기에 그런가 봅니다.

201910월을 맞이하면서 해양사목 담당신부로 이제 갓 3년을 살았습니다. 본당 신부로서 겪었던 신자들과의 인연과 그 인연 속에서 체험했던 삶의 희로애락과는 사뭇 다른 해양가족들과의 만남 속에서의 희로애락, 그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하느님의 은총들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은총은 두려워하지 않는용기의 은총과 내가 늘 함께 하리라는 생명의 은총입니다.

신학교를 라틴어로 세미나리움(seminarium)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못자리, 혹은 모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은 신학, 철학 같은 학문도 배우고 익히지만, 하느님을 향한 마음, 사람을 향한 마음도 배웁니다.

커다란 배를 삼켜버릴 듯한 파도와 폭풍우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선원들은 하느님은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마음을 다잡고, 또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하느님을 향한 신뢰를 굳세게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그런 고비들을 이겨낼 때마다, 그들은 은총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고마움도 키워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은 동료들을 더욱 더 의지하게 되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더욱 더 깊이 키워나갑니다. 이러한 그들의 일상은 신앙을 키우고, 굳세게 하며, 마침내 하느님의 사람을 키워내는 못자리와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시월입니다. 十月이기도 하지만, 時月이기도 합니다. 때를 안다는 것, 날수 셀 줄을 안다는 것은 지혜를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시편 90,12 참조). 날수를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은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중요성을 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선원들의 삶을 헤아려 보면서, 선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을 키워내는 못자리임을 깨닫습니다. 선원들과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삶의 자리의 의미’-세상은 하느님의 사람을 키워내는 못자리-를 배우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 은총의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하느님께, 그리고 선원들과 해양가족분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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