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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대돌 ]

순교자 8분이 1868년(병인박해)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 구주원에 의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당한 수영장대에 흩어져 있던 돌이다.
현재, 4개는 장대골 성지에 보존되고 있으며,
3개는 수영장대에서 오류대 한국순교자기념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고, 1개는 보존여부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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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성록(日省錄)]

1760년 (영조 36년) 부터 1910년 (융희 4) 까지 150년간 날마다 역대 임금의 언동(言動)을 기록한 책으로,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3호로 지정되었으며 필사본으로 모두 2,329권이다.
규장각에서 편찬한 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가 세손(世孫)으로 있을 때인 1752년 (영조 28년)부터의 언행과 동정을 일기체로 적고, 그가 왕위에 오른지 3년 후(1779년)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각신(閣臣)들로 하여금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들을 기록하게 하였다.
이것을 자료로 하여 1783년부터 작성을 시작해 1785년 1월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성록]이 처음으로 편찬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규장각의 책임 관원에게  맡겨 이 편찬체제를 맡겨 이 어 나가게 하였는데, 현재는 1790년(정조 14년)부터의 기록만 남아 있다.


증자(曾子)의 "하루 세 번 내 몸을 돌이켜 살폈다"는 말의 뜻을 살려 [일성록]이라 하였다 하며, 기사마다 표제를 붙이고 하교(下敎), 사륜비판(絲綸批判)등 중요 사항은 전부를 수록하는 한편, 상주(上奏)등은 간추려 기록하게 하였다.
또 내용에 따라 하늘, 임금의 조상, 임금, 신하 등으로 구분하여 읽고 싶은 것을 찾고 가리기 편하게 하였다.


1827년 (순조 27년) 유본예(柳本藝)가 '일성록범례'를 만들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분류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연대기이며 사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1982년 부터 1996년 까지 총 86권의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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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일기(致命日記)]

1866년(고종 3)의 천주교인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명단과 그 약전을 수록한 책.
1권 162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62면. 1895년에 간행된 이 책은 조선교구의 제8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주교 뮈텔(Mutel, G. C. M.)이 1891년 2월, 11년 만에 서울에 들어오자 곧 병인년 이후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자료를 수집하여, 4년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모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지역적으로 정리하여 전국 본당에 배포한 것이다.

발행목적은 뮈텔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순교자들 가운데 모범되게 순교한 사람들을 뽑아 장차 성인품()에 올리는 데 필요한 확실한 증언을 얻고자 하는 데 있었다.

『치명일기』에는 주교 베르뇌(Berneux, S. F.)를 비롯한 프랑스인 성직자와 한국인 순교자들의 출생지와 신앙상태, 붙잡힌 날짜와 장소, 치명일자와 장소, 나이 등을 지역별로 일련번호를 붙여 기록하였는데 모두 877명의 순교자가 수록되어 있다.

다만, 함경도 영흥에서 순교한 19명에 대하여는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그 행적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치명일기』에 나타난 순교지의 분포로 보아 전국 8도에서 순교자가 생겼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각 지역별 천주교 교세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도 평가된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등 정부문서에 나타난 기록 등을 근거로 하여 26명의 시복() 수속자 중 24명이 1968년 복자위에 올랐으며, 다시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치명일기 [致命日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에 실린 27인의 순교자 등 당시에 순교한 28명에 관한 상세한 순교 목격담을 쓴 치명자전(致命者傳)(필자미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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