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가벼움
서품식에서 주교님은 사제 후보자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며, 읽는 바를 믿고, 믿는 바를 가르치며,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십시오.”라는 말을 하십니다. 그 말은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임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 내 형제고, 어머니인가 반문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형제고, 어머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라야 하느님의 뜻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신앙은 무겁고 진지하기 보다는 가벼운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예전에 어떤 어린아이가 물었습니다. “우리 신부님은 강론 때 맨날 사랑해라, 용서해라 하시면서 정작 왜 맨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소리를 치시나요?” 그 물음에 저는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사람은 웃어넘기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이 신앙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볍다는 말이 신앙을 소홀히 여기고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은 누구보다 하느님을 위하는 삶을 진지하고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 꾸짖음을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들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들을 무겁게 받아들였던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하느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이나 말씀은 가볍게 넘기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경우가 흔하고 더 많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자존심과 가치관을 완전히 버려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넘쳐나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의미 있다 생각하는 신심활동에 열심히 빠져살면서 자신은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바리사이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히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전통과 관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도, 자기가 옳다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전혀 겸손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너무나도 가볍게 대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겸손하지 못한지, 자기의 뜻이 더 중요한지, 용서할 마음이 없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신앙이 고상한 취미가 되고 자신의 고집을 견고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지 않고,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을 무겁고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 신앙이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