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20 1 2 주님 공현 대축일 금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미사 때마다, 영성체 직전에 사제는 성체를 쪼갠 , 쪼개어진 성체를 들어 높이면서(현양), « 보라, 하느님의 어린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거룩한 잔치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라고 선포한다. ‘어린 이라는 단어가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이라는 단어가 가져다 주는 이미지 간의 간격이 참으로 크게 다가온다. 어린 양은 참으로 힘없고, 나약한 존재다. 그에 반해 무언가를 없애시는 분은 강하고, 힘있는 존재다. 상반되는 이미지가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이라는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일견, 창과 방패, 모순처럼 들린다. 힘없고, 나약하기 이를 없는 어린 양이 어떻게, 무슨 수로 세상의 죄를 없앤다는 말인가 ?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사실 세상의 논리에서 비롯되는 물음이다. 세상의 논리는 양자 간의 대립이라는 현상에서 유추된 것이다. 세상은 어느 한쪽 편과 다른 한쪽 편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이 다른 쪽을 쳐부수고, 그럼으로써 이기고, 지는 대립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 없앤다, 치운다, 쳐부순다 » 등의 이런 단어들은 힘의 논리에 정초해 있다. 악을 없애고, 치워버리고, 악의 뿌리까지 뽑아 낸다는 식의 이런 말들은 세상의 논리에 정초해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고 때의 하느님의 일은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난다.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데려 수도 있었던 예수께서는 벌거벗은 외롭고 나약함으로 어떤 방어도 하지 않는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다(마태 26,53 참조). 세상의 죄는 증오와 분열, 갈등과 전쟁, 죽음, 폭력, 억압, 거짓, 중상모략, 소외, 내버림, 등이다. 이러한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방법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 , « 아버지, 사람들을 용서해 주소서.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처럼, 용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용서는 결코 과거에 대한 망각이 아니다. 잊어 버리고, 떠올리지 않고, 편한 마음, 평온한 마음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도피도 아니다. 용서한다는 , 참으로 아픈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했을 , 누군가가 나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을 ,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 « 두고 보자 », «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너는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것이다 »라는 식의 보복과 저주 대신에, « 너는 나를 힘들게 하였으나, 나는 너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 » 것이 용서다.

이런 용서를 두고, 물리적인 , 세상의 힘을 가진 자들은 힘없는 것들이 자기네들의 힘없음을 항변하고, 합리화하려는 것이라고 빈정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는 영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을 믿고, 보이는 것만을 신봉하는 이들은 결코 없는 영적인 보화가 용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용서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랑은 권력, 힘을 수반하지 않는다. 사랑은 폭력이 아니다. 사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으면 폭력을 낳을 뿐이다. 이미 별들이 없어진 밤에 깊은 어둠만 더할 뿐이다. 어둠은 어둠을 내쫓지 못한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있다. 미움은 미움을 몰아내지 못한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있다.

안에, 가족 안에, 가족이 속해 있는 사회 안에, 그리고 사회가 모여 이룬 나라 안에 세상의 죄는 이미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세상의 죄는 대단히 폭력적이다. 강하다. 하느님은 세상의 죄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항거하셨다. 저항하셨다. 그러나 세상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서 대처하신 방법은 지극히 나약한 , 비폭력적인 것이었다. 비폭력은 폭력에 대항하는 하느님의 길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 아닌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 불의한 것에 대해 촛불을 드는 , 이것은 비폭력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방식이다. 세상은 그러한 비폭력을 두고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러나 폭력에 의해 박해를 받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의해 공격을 받고, 부당하게 취급 당하는 것은 자체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느님을 증언하는 길이다. 세상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길을 걸으려 살아가는 이들은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다. 비폭력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특별히 나라 땅에서 안보의 논리, 경제 개발의 논리, 종북의 논리, 분열과 증오와 죽음의 논리에 저항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이 걸어가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기도한다. 어린양은 비록 무참히 살해되셨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시고 부활케 하셨다는 진리를 자신들의 희망의 원천으로 삼기를 기도한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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