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 12 1 대림 1주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대림시기는 사순 시기와 같은 속죄와 단식을 선포하는 그런 기다림의 시기가 아니다. 많은 교우들은 대림시기를 사순 시기와 비슷한 참회와 속죄의 시기로 생각하는데 교회의 대림시기에 관한 지침에도 참회에 관한 말은 없다. 이 대림시기에도 사순 시기처럼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지만 그 이유는 슬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탄 당일 가장 알맞은 이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부르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보류하기 때문이다. 대림시기는 엄격한 고행의 시기가 아니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잘 준비하기 위해 깨어있는 그런 기다림의 때이다. 교회는 그래서 대림에 알렐루야를 계속 노래한다. 다만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 것은 천사들의 노래를 성탄 밤, 더욱 장엄하게 엄숙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잠시 보류해 놓은 것이다.

무언가가 올 것에 대한 기다림.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무도 짜증 나는 것들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시험을 기다리는 학생이 거의 없고, 병고를, 눈물을, 이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림 속에는 감미로움이 있고, 설레임이 있고 벅차 오름이 있다.

대림(待臨)절은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님, 나를 사랑하신 님,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가야 정말 제대로 잘 살아가는 것인지를 보여 주신 님, 나를 위해서 생을 살아가신 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 님은 우리가 싫다고 해서 오지 않거나 빨리 오시리라고 한다고 해서 일찍 오실 분은 아니다. 때가 차면 오시는 님이다. (갈라 4,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시는 님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기차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내 부모님을 알아보는 것은 내 자신뿐이다. 태어나실 님을 이스라엘 사람이 다 알아보지는 못했다. 왜 일까? 복음서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회개하시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마태 3,2)” 기다리는 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 바로 회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세수하고, 옷매무새를 고치듯이 우리가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준비가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을 세상에서, 나에게서 돌려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사는 개인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나를 위해서, 나와 연관된 모든 것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는 것, 세상의 논리, 돈의 논리, 종북의 논리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법을 따라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바로 회개다. 그러면 회개의 삶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수 있을까?

요한 금구 성인은 우리에게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신다.

㉠ 죄를 저주하라. 오실 님은 사랑이시고 선이다. 만일 내 속에 죄가 있고 죄를 좋아한다면 오시는 님은 나를 지나쳐 비켜 가실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선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원수에게서 당한 분노를 기억하지 않고 분노를 억제하며 형제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어라.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 이웃을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의 잘못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참 복잡하다.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좋은 일은 기억하고 나쁜 일은 잊어버리자. 좋은 것들을 기억하기에도 너무나도 모자란 우리들이 아닌가?

㉢ 마음에서 나오는 열렬한 기도를 하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마음속에 자주 그려본다. 기다림이 쌓이고 쌓이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만남이 이뤄진다고 했다. 하느님을 그리는 사람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마련이다.

㉣ 자선(애긍시사)하라. 자선(慈善)은 불우한 사람을 찾아가고 가서 같이 있어 주어야 하는 것이 원래 자선의 본의미다. 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그들과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선이다. (마태 25,35-36).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못하므로 우리의 시간을 투자해서 정성을 들여 번 돈을 이웃을 위해 쓰라고 내어놓는 것 아니겠는가?

㉤ 양순하고 겸허하게 행동하라.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과장하지도 않고, 축소하여 낮추지도 않는 것이다. “주님 이것이 ‘내의 모습(꼬락서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대림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과거의 주님과 미래의 주님은 당신 스스로 약속하신 대로 현재에도 우리 가운데 계신다. 대림시기가 성탄이라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 육화하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의 때이긴 하지만, 육화하신 하느님은 바로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한가운데, 성체와 성혈 안에 그리고 미소한 형제들 안에, 지금 여기에 계신다. 절망스러운 상황들만 하루하루 겹쳐지는 이 어두움의 때에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안에 계신다. 칼로 보습을 만들고, 창으로 낫을 만들기를 바라는 이들, 전쟁무기들이 모두 다 폐기되고, 마녀 사냥이 종식되고, 갈라진 나라가 하나되고, 군비 경쟁하는 나라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살자고 외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안에 계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과거에 오셨던 주님과 미래에 오실 주님을 잘 맞이하려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과 세상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치욕스러운 죽음까지도 맞이하셨던 분이다. 언제 올지 모를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종말이 완성이니, 그 완성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이 그 완성을 이루는 데 필요한 벽돌 한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천하고 애인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생명의 길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시기, 이 시기에 우리 모두 생명의 길을 기쁘게 서로 어깨동무하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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