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 11 17일 연중 제33주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2천년 전 마흔여섯 해를 지어 올린 이스라엘의 웅장한 성전 앞에 예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우뚝 섰다. 그의 손에는 당신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채찍이 들려 있었다. 그분은 채찍을 내리쳤고, 그 채찍질에 성전 앞뜰에서 판을 펴 놓았던 환전상의 돈은 땅으로 떨어지고, 탁자는 엎어졌다. 성전의 제물로 사용될 양과 염소가 달아나고 비둘기는 새장을 벗어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느님의 집, 기도하는 집이어야 했을 성전이 제 구실을 못하고, 도둑과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던 성전을 정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예수는 채찍을 들며, 이렇게 외쳤다 : « 저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예수께서는 성전을 보며 감탄해 하는 사람들에게 성전 함락에 대한 예고의 말씀을 하셨다. 바로 우리가 오늘 복음에서 들었던 부분이다.

성전 정화와 성전 함락 예고 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현재 이 나라 이 땅, 서울 여의도에 있는 지구가 위험에 빠지면, 동그란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고, 거기에서 로보트 태권 V가 나온다는 그 성전과 서울 서초동에 있는 또 하나의 성전을 떠올려 본다. 이 나라의 주인인 백성이 피땀 흘려 모은 정성으로 세운 그 성전들, 그러나 그 성전들 안에는 백성을 보살피고, 백성의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백성의 행복을 위하고, 백성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들은 별로 없고, 지난 날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백성을 괴롭히는 도둑과 강도의 소굴이 되어 간다.

지난 여름부터 그 두 성전 앞에서는 채찍 대신 피켓을 들고, 성전들을 정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그 성전들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지방의 사람들은 TV를 통해 본다. 그들의 의노에서 나오는 말들, 곧 “적폐청산, 검찰 개혁”은 마치 2천년 전 “저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채찍을 들고, 성전을 정화하고, 나아가 성전을 허물어뜨리려고 했던 예수의 그 몸부림이 진리의 행동이었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마흔 여섯해나 걸려 세운 성전이지만, 그 성전을 허물어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희망하는 사람이다.

어떤 모습의 인생도 가치를 잃지 않는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이 어울려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면서 이루어 내는 행복, 그런 세상과 그런 행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백성을 통하여, 백성과 함께, 백성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은가 ? 아니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척 하고 싶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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