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선임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당신의 선임이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1978년 10월 16일에 제 264대 교황으로 선출되던 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앞에서 새로운 교황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첫 인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먼 곳에서 왔다는 말은 사도 바오로의 서간의 한 문장이다. 일반적으로 먼 곳은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북미 지역이 아닌 제3세계, 곧 변방을 일컫는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별로 관심을 얻지 못하는 곳, 소외된 곳, 소위 촌동네이다. 먼 곳에서 왔다는 말은 나는 촌놈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먼 곳은 우리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먼 곳은 인간의 때가 덜 묻은 곳, 하느님의 일하심이 생생히 느껴지는 곳, 사람에게 희망을 두기 보다는 하느님에게 희망을 두면서 살아 가는 곳이다.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이 폴란드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교황님은 자신이 촌놈이라는 것, 바로 세상의 때와 인간의 때에 아직은 물이 덜 들었다는 것을 알리시는 동시에, 당신 자신은 하느님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당신은 지상의 교회와 온 세상에 하느님을 알리러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 나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라고 당신의 첫 말씀을 토해 내셨다.
이 말씀에 이어서 하신 «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예상되는 어려움들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시대의 문제들이라고 하는 것들도 그 시대가 지나면,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혹은 문제 해결은 전혀 되지 않은 채,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의 다름에 따라, 하느님의 일도 다르게 진행된다. 때로는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위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로 여겨질 때도 있고, 때로는 평등과 사랑을 위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때로는 생명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로 여겨질 때도 있다.어떤 시대에는 제1독서의 표현처럼, «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어야 하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요, 시대의 문제일 때도 있고, 어떤 시대에는 «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 »거나, « 전쟁을 배워 익히는 » 것이 시대의 한 모습일 때도 있다. 그러한 시대에는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평화를 이룩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의 현실에서는 가장 필요한 일인 남의 대한민국과 북의 조선인민 공화국 간의 평화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요,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 교회는 우리들로 하여금,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게 하고, 이번 주간 전체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본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본당의 구성원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성찰하라고 한다. 오늘 독서들과 복음은 ‘복음화’라는 일관된 주제로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정체성과 신원을 다시금 일깨우게 한다.
세례를 받았다고 복음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필요치 않는 세상에서 복음화를 이룬다는 것은 하느님은 필요와 불필요의 싸움 너머에서 언제나 인간과 세상을 향해 당신의 은총을 베풀고 있음을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환언하면, 언제나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져주는 것,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 내가 먼저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복음화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음화를 위해 내 한 인생 바치려고 하면, 언제나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실패하는 것 같고, 나만 억울해지는 것 같아진다. 그래서 니가 먼저 해봐라, 그러면 내가 따라서 해보마 라며, 망설여지는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처럼 여겨진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말씀처럼, 우리 두려워하지 말자. « 이 나이에 무슨 »이라는 말도 하지 말자. « 내가 아직 너무나 어려서 »라는 말도 하지 말자. « 힘이 부쳐서 », 혹은 « 몸이 안 따라 줘서 »라는 말도 하지 말자. 두려움 속에서 정의를 위한 일, 평화를 위한 일, 자유를 위한 일, 인권을 위한 일, 사랑을 위한 일, 생명을 위한 일, 평등을 위한 일을 몸소 시작해 볼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 사랑을 바라는 사람들, 생명을 바라는 사람들,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세상의 참 좋은 일을 위해 일하는 데에도 사람이 모이고, 힘이 생겨나고, 용기가 생겨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하느님의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는가 ?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약속하셨다. « 세상 끝날까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라고. 그렇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의 맏형님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들에게 참용기와 참지혜를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까지도 우리에게 주신다. « 당신들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대신에 뱀을 주겠습니까 ?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습니까 ? 당신들이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습니까 ? »
주님, 저희가 세상의 어두움에, 세상의 힘에, 세상의 논리에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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