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딸깍발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 신학교에 입학하고 국어 시간에 배웠던 단어들 가운데, 신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단어 하나가 딸깍발이였다. 딸갈발이란, 구한말, 남산골샌님을 이르는 말이었다. 딸깍발이란 옛날 남산골에 모여 사는 가난한 선비들이 신이 없어 마른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닌다고 해서 생긴 말로, 나막신을 신고 다닐 때 '딸깍딸깍'하고 나는 소리를 빌어서 나타낸 말이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글 중에 « 딸깍발이 »라는 글이 있는데, 그 글에 보면, 딸각발이의 생활신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 « 청렴 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중략)  겨울이 오니 땔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 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곧아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 년 봄에 두고 보자.” 하고 벼르더란 이야기가 전하지마는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 »
딸깍발이는 궁핍한 삶 속에서도 의기와 지조를 지키면서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전통적인 선비를 상징하는 말이기는 했지만, 신학교에서 딸깍발이라는 단어는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신학교 교칙을 글자 그대로 다 지켜내는 사람을 비꼬아 부를 때에 쓰인 단어였다.
딸깍발이라는 이 단어가 딱 들어 맞는 사람들이 성경에 나온다. 바로 바리사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하신다. 그 비판의 소재는 바로 십일조였다. 오늘 복음에서는 61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그 율법에서 아주 중요한 조항이었던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시대에는 유대교 신도가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의 조항이 613개나 되었다. 그 613개 조항들 중에서 « 해서는 안 된다 »는 금지명령이 365개이고, « 해야 한다 »는 명령이 248개였다. 십일조는 소출을 냈을 때에, 그 소출의 10분의 1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율법 조항이다. 직접적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문이었던 레위들에게 바치면, 레위들은 자기가 받은 것의 10분의 1을 제사장에게 바쳤다.
얼핏 구약성경을 보면, 십일조는 마치 레위들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민수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 레위인은 땅을 나누어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이 그들을 위하여 십일조를 내었고 레위인은 그 중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야훼께 바쳐야 했다 »(민수 18, 20-32). 그러나 십일조는 레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신명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 « 너희는 삼 년마다 한 번씩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내놓아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있는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다 » (신명 14, 28-29; 26,12-1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셨으니까, 그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살려 내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 내는 것이 바로 십일조의 근본 정신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특히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십일조를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느님께 제물을 제대로 바쳐야만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쳤을 뿐이었다.
철저한 율법 준수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애매모호해 보이는 하느님의 뜻을 구체화시켜서, 그 뜻을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바리사이가 놓쳐 버렸던 진실이 하나 있다. 자기들이 그렇게 믿었던 그 하느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는 것이다. 혹시 나도 지난날 바리사이들이 범했던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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