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전통적으로 교회는 기도라는 것을 하느님과 함께 나누는 대화라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는 대부분 하느님과 개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한다. 그러나 기도가 개인적인 것에만 너무나 한정되어 버리면, 거기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나아가 믿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당신의 사도좌 권고 « 복음의 기쁨 » 2항에서 그 위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지고, 그러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바로 주님의 기도이다.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산상 설교에서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첫대목은 이렇다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나만을 위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평등하게 부를 수 있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불평등과 계급간의 갈등과 빈부의 격차 때문에 버려지고, 소외될 수 있으나,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아버지를 부를 때에는 적어도 그 분의 사랑스런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태생이 어떠하든, 부자이건, 가난하건, 힘이 있건 힘이 없건, 힘없는 자를 무시해서도 안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는 호칭에 들어 가 있다.
이어서,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려면, 내가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제대로 살아야 가능하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려면 내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해 내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 나온다.
«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소서 »라고 우리는 기도한다. 일용한 양식은 이미 하느님께서 주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더 많이 먹고, 어떤 사람은 덜 먹는다. 배가 커서 더 많이 먹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 탓에 더 많이 먹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모든 사람들이 빈부의 갈등을 덜 느끼고,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는 기도가 바로 «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소서 »라는 기도다.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소서 »라고 우리는 기도한다. 용서 !!! 많은 사람들이 용서한다는 것을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더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과거의 잘못을 잊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누가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내놓으라는 주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등하게 어려운 말씀이 « 용서하라 »는 말씀이다. 너무나도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입으로는 용서하겠다, 용서하였다고 해도 미운 놈 만나면 다시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마치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용서하겠노라고 말한다 해도, 화해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화해라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니 용서하는 것은 곧 화해하는 것이라는 혼돈에 빠져서는 안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용서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 제가 용서를 베풀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를 받는 측에서도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효과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보상하려고 할 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용서를 하는 것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은 별개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기도 대목을 하나하나 다 살펴 보려면, 오늘 밤을 새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살펴 보았다.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주님의 기도를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음미해 봄이 어떻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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