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8월 28일 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돌아가신 정명조 주교님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옛날에는 아오스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1년 1월, 사제서품을 받기 직전에 사제품 피정을 1주일 가량했었다. 경남 고성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남자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정명조 주교님의 지도로 피정을 했다.
 정명조 주교님께서 부산교구 교구장으로 착좌하시고 맨 처음 부제품을 주셨던 이들이 나와 내 동기 신부들이었다. 피정 중에 자기가 가장 닮고 싶은 성인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18명의 사제서품 후보자들은 각자 자기가 닮고 싶은 성인들을 소개했다. 주교님께서는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성인으로 당신의 주보성인이신 아우구스티누스를 소개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의 천재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그리 평탄하지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에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지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신천지와 비슷하다. 마니교에 따르면, 신은 악신과 선신이 있고, 세상은 악신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세상은 일찌감치 떠나든지, 아니면, 이 세상은 어차피 악신의 지배를 받아 악하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든지 하고, 나중에 죽어서, 선신을 만나더라도, 세상이 악신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인데, 거기서 어떻게 선을 행하며 살 수 있겠는가 라고 따지면 선신은 주늑이 들어서 그렇게 따지는 이를 구원해 준다는 식으로 얼토당토않은 가르침을 마니교는 펼쳤다.
 마니교에 빠져 있는 동안 여자를 알게 되고, 아이까지도 낳았다. 그러다가 어머니 모니카의 지속적인 눈물과 기도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회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387년에 암브로시오 성인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 33세였다. 391년, 37세에 이르러 사제서품을 받았고, 395년, 41세에 이르러 주교품을 받았다. 이때부터 히포라는 도시의 주교로 살다가 430년, 76세에 이르러 생을 마감했다.
 인생 전체가 한편의 드라마같았던 아우구스티누스였고,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정작 아우구스티누스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돌아가신 정명조 주교님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주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글 한 편을 우리들에게 읽어 주셨다. « 삼위일체론 » 15권 51항에 나오는 글이었다. 여러분과 함께 그 글을 나누고 싶다.
 힘이 닿는 데까지
임께서 주신 힘이 닿는 데까지
임이 누구신지 물었나이다.
믿는 바를 이치로 알고 싶어서
따지고 따지느라 애썼나이다.
임이시여, 저의 주님이시여,
제게는 둘도 없는 희망이시여,
제 간청을 들어주소서.
임을 두고 묻는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임의 모습 찾고자 늘 몸 달게 하소서.
임을 두고 물을 힘 주소서.
임을 알아 뵙게 하신 임이시기에
갈수록 더욱 알아 뵙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신 주님이시기에
임 앞에 제 강함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약함이 있사오니
강함은 지켜주시고, 약함은 거들어주소서.
임 앞에 제 앎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모름이 있사오니
임께서 열어주신 곳으로
제가 들어가거든 맞아주소서.
임께서 닫아거신 곳으로
제가 두드리거든 열어주소서.
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임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임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염원을 제 안에 키워주소서.
임께서 저를 고쳐놓으실 때까지,
고쳐서 완성하실 때까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흔히 겸손이라는 것을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겸손의 첫번째 의미는 자기 자신의 꼬라지를 제대로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똑똑하고, 제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하느님의 발가락 때보다 못하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 앞에서 하느님 앞에 부복하며, 도와 달라고,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겸손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저 머리 조아리고, 굽신굽신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겸손한 체 하는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었다고 그 죄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 잘못을 범했으면, 잘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이다. 죄가 무엇인지도,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 가고 있는 군상들이 너무나도 많은 지금의 이 나라 이 땅은 그런 겸손한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때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나부터 먼저 솔직하고, 정직한 삶, 겸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 성 아우구스티누스 축일은 나에게 이런 다짐을 하게 한다. 여러분은 어떤 다짐을 하면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을 과거로 돌려 보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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