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차디찬 겨울에 대한 저항이듯, 부활은 죽음에 대한 저항입니다.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사방천지가 완연한 봄입니다. 봄이 왔다는 것을 TV 뉴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 몸이 느끼고 있지요. 대지가 푸른 생명의 물을 올리고 가지들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나리는 이미 만발하였고, 벚꽃도 활짝 폈습니다. 봄에는 사람의 몸에도 생명의 물이 흐릅니다. 자연히 봄나물을 찾게 되고 흙냄새 밴 생명의 맛을 찾지요. 이 좋은 봄에 우리는 함께 묵상하기 참으로 좋은 주제를 만납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죽었던 대지에도 새 봄이 시작되듯이, 살아도 죽은 듯 살고 있던 우리 생명에도 부활이라는 새 기운이 살랑살랑 불기를 바래봅니다.

 

부활, 도대체 부활이 무엇일까요 ?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 생애 전체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세례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말씀,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이라는 그 말씀을 십자가 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지키셨던 예수님, 그러나 그렇게 죽은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부활시키셨지요.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선포와 행동들, 예수님의 삶 전체가 궁극적으로 옳다고 인정하셨답니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라는 피맺힌 절규의 물음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셨지요. 하느님은 고통 속에서도, 바로 고통 속에서 숨겨진 채 현존하시는 분, 극도의 위협, 무의미, 허무함, 버림받음,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고 붙잡아 주시는 분, 인간의 곁에서 항상 인간과 함께 아파하시는 분, 함께 고통당하는 하느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되시는 하느님, 바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완전히 계시하셨지요.

 

사랑하는 해양가족 여러분,

부활은 그저 2천년 전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벌떡 살아 나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로운 저항, 거짓에 대한 하느님의 진리의 저항, 죽임에 대한 하느님의 살림의 저항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 부활을 체험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점철되는 문화 속에서도 생명을 부르짖고, 잊어버리고 가슴에 묻어 버리자는 달콤한 유혹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말 잘 듣고, 입 다물고 살라고 하는 세상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서민들이 입으로라도 « 이 썩을 놈의 세상 »이라고 외치는 것, 그렇게 마음속에 응어리 진 것을 토해 내며 저항하는 것이 바로 부활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저항, 부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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