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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신자다

김새록 로사 / 수필가 rose0624@hanmail.net
 

많은 사람이 휑한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지하철역 입구에는 길바닥에 앉아서 손을 내밀고 있는 걸인을 자주 보게 된다. 내미는 손이 살고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의미하게 내미는 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또한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다. 앞만 보면서 빠른 발걸음만 재촉할 뿐이다. 나 역시 방관자가 되어 지나가고 만다. 가방을 열고 지갑 꺼내기가 귀찮기도 하거니와 바라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로사’라는 세례명을 지니고 있는 걸 보면 누가 보아도 신자일진대 종교인이 지닐 법한 특유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는 이기심으로 가려져 무관심으로 지나치고 만다.
신심이 깊은 분들은 벌써 언행이 다르다. 선택받길 바라며 관상용으로 화원에 피어있는 꽃이 아니라, 산속 깊은 곳에서 보아주는 사람 없어도 청정하게 피어 향기를 발산하고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를 연상시킨다. 내 머릿 속에 야생화처럼 연상되는 사람 꽃이 활짝 피어 떠오른다. 그분은 이기대성당‘샛별’레지오 단원인 데레사 님이다. 단원 10명 중에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데도 대체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솔선수범하시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어가야겠구나 하고 은연중 배운다.
오래 사용하여 촛농이 떨어지고 지저분한 레지오 흰 보를 가지고 가서 빨아 오시는가 하면, 회합 때마다 미리 와서 단원들의 방석도 깔아 놓으시고, 커피도 타가지고 와서 한 모금씩이라도 나눠 마시려고 하는 등 레지오 정신인 성모님을 닮은 깊은 겸손과 온전한 순종, 기도 생활이 몸에 밴 모습을 볼 때, 내 안에 숨어있는 교만과 위선이 절로 고개를 숙인다. 좋은 글을 읽고 써도 잘 답습이 안 되는데 몸을 낮추고 소리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들의 행동은 쉽게 감동으로 전해 온다. 인간의 힘이 아닌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신앙의 척도는 묵주기도를 얼마나 바쳤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오늘 주일 미사 때 주임신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데레사 님을 보면 맞다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진정한 신앙이 아닐 터, 나 역시 지하철역 걸인처럼 간절함 없이 묵주기도를 바쳤기에 기도의 체험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겉과 속이 일치된 참 신자가 되길 바라며 진정성이 있는 참된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성모님의 고요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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