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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다

 

노옥분 글라라 / 시인 gll1998@hanmail.net

 

신록이 번지는 주변을 보노라면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옵니다. 바람을 타며 일렁이는 환희의 동작은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경이의 악보입니다. 환자 같았던 깡마른 나뭇가지에서 툭툭 돋는 연둣빛 촉수는 신비입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무얼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말라.”시는 예수님의 당부에도 우리는 고민합니다. 냉장고를 꽉 채운 먹거리와 옷장 속 넘쳐나는 옷들이 있음에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무얼 입을까를 걱정하는 나를 봅니다.


선택장애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선택을 미루거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르는 말로써, 부모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터넷 속 다양한 정보와 대량생산으로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도 이유입니다.


천주교에 첫발을 딛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인 중에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가 있었습니다. 말만 비단 같았던 이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늘 웃으며 이웃을 대하는 이의 모습이 대조적이었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언행의 차이가 확연했다고나 할까요.
성당에 가고 싶었지만 권유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존재가 궁금했고, 이왕이면 아름다운 이가 믿는 신(神)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괴정성당 별관(현재의 사하성당)을 찾았고, 남편과 함께 교리반에 합류를 했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영세 후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매일미사가 좋았고, 레지오 활동이 좋았고, 높고 낮음이 없는 호칭이 좋았습니다. 충만한 기쁨은 자주 고해소로 향했습니다.“제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은 천주교를 선택한 일인 것 같습니다.”주저리주저리 소죄까지 고하고 나니“그것은 자매님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선택한 것입니다.”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아하!
일상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하고,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선택하셨으니 모나고 미운 구석도 용서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든든한 배경이 어디에 있을까요?


영세 때를 떠올리며 초에 불을 붙입니다. 혀의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바라보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나의 간절한 열망이 오롯이 그분께로만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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