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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아름다운 ‘작은 것’

 

장영희 요한 / 시인, 부산대 겸임교수 jangyhi@hanmail.net

 

겨울 산에는 봄날 천리만리 퍼지던 황홀한 향기와 그 무성하던 여름날 잎을 다 떨구어버리고 최소한의 목숨 보전에 필요한 것만 가지고 추위를 맞이하는 겨울나무들이 있다. 그들이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작은 모습으로 스며든 목숨의 향기 때문이다. 그 향기는 뿌리를 살지게 하고 새로운 나뭇잎과 황홀한 꽃들을 키운다. 그 작은 것이 이룩한 아름답고도 웅장한 모습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겨울 산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은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곧 다가온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내세우면서 좀 더 큰 권력 가지려고 싸운다. 그 사람들의 그간의 행태를 보면 그 감투는 이미 본질에서 사뭇 멀어진 것 같다. 권력이라는 완장은 차기만 하면 벗어 놓기 어려운 것이라서 마성을 지닌다. 조그만 조직사회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완장을 차려고 한다. 심지어 권모술수를 부려서라도 그 완장을 차지하려고 한다. 모두 다 좀 더 큰 것, 좀 더 큰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재산 다툼으로 장남이 아버지를 살해한 어느 여자 배우의 집안 이야기, 최근 우리를 강제로 어지럽히는 재벌가 형제들의 추접스러운 재산 싸움 등은 더 큰 것과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이 저질러 놓은 모습,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가치관이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성경 말씀인‘겨자씨의 비유’(마태 13, 31∼32)를 보면, 작은 겨자씨가 자라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가 되고 그곳에 새들이 깃들어 산다고 했다. 겨자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장 작은 씨이지만 땅에 심긴 뒤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자란다.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가 1973년에 출간한『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책이 있다.‘절제와 검소가 미덕인 사회’로 전환할 것을 실천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한 경제비평서이다.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소홀하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한다. 내가 놓인 작은 자리, 내가 맡은 작은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도 깨닫지 못한 죄가 크다. 5분만 더 일찍 움직였더라면 미사 시간에 늦지 않았을 텐데 그 작은 시간을 가볍게 생각한 뒤에 얼마나 자주 후회했던가. 작은 말 한마디 가볍게 내뱉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순간적으로 내뱉은 그 말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던가. 노거수도 작은 씨앗에서 출발한다. 거대한 성도 작은 돌멩이 하나부터 쌓기 시작한다. 이제 봄이다. 작은 씨앗이 이루는, 아름답고 거대한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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