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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디 있을까요

 

민정아 루치아 / 수필가 1004luciamin@hanmail.net

 

이맘때면 절절히(切切-)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 곁을 홀연히 떠난 대녀들이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며 또 신앙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모든 게 궁금해진다. 연락이라도 한 번 해주면 좋으련만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서는 감감무소식이 되었으니. 비록 몸은 떠났을지라도 대모로 천상의 인연을 맺은 사이니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늘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아 사순절이 되면 잃어버린 대녀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한다.


지난 가을이었다. 원주교구에서 성지순례를 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 안은 이미 무르익은 순례 길 분위기에 서로들 얘기하느라 시끌벅적했고 강원도 산골을 지나던 터라 전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이어지는 통화 사이로“저는 000데레사 입니다. 딸이 하나 있는 로사 엄마인데 기억나시는지요.” “대모님 찾으려고 영세 받은 온천성당 사무실에 가서 물었더니 얼른 전화번호를 알려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잘 계셨지요?”딸하고 같이 영세를 받은 데레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영세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떠난 대녀라 늘 애잔한 마음이 남아있었는데 너무 반갑고 궁금해 당장 달려가 만나고 싶었다. 전화를 끊고 데레사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녀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 4살짜리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신앙을 찾아 성당을 나왔고 어린 딸을 앞세우고 열심히 교리공부를 했다. 수녀님께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대모로 구해 달라 부탁해놓고 영세 받은 지 6개월도 채 안 돼 친정엄마에게 딸을 맡겨두고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무슨 연유인지 궁금해 친정으로 찾아갔더니 어린 것만 쫄랑쫄랑 나와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지. 그 후 딸 로사를 보러 몇 번을 갔었지만 어느 날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어머니마저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리자 연락이 끊어졌다.


27년이 흘렀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사느라 주님을 잊고 지냈어도 신앙을 찾아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주님께서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신 특별한 부르심이라 생각한다. 떠났던 대녀가 돌아올 때면 그 기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은총의 때를 보내고 있다. 쉬고 있는 대녀들이 당신께 돌아와 파스카 축제를 다함께 손잡고 지내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일까. 이번 사순절에는 미안함의 꼬리표를 내려놓고 더 사랑하라는 부르심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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