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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스무 살 성년의 해에

회장 김양희┃레지나

하늘이 참 곱다. 쪽빛 너울을 쓴 듯 가을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산다는 일은 그러나 무엇에 쫒기는 일인지 한유롭게 하늘 쳐다보며 여유를 부릴 한가함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가을걷이의 지점에 다다른 지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한 해를 살아왔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1988년 <가톨릭문우회>란 이름으로 출범한 부산가톨릭문인협회가 올해로 만 스무 살 성년의 나이로 자라났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때까지 창립 당시의 원로 선배님들께서 버팀목처럼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니 이것이 본회의 큰 힘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시끄러운 세파에도 빈수레처럼 삐그덕대지 않고 담담하게 먼 길을 달려올 수 있었음은 그 중심축에 언제나 한결 같은 원로 회원님들의 후배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주신 글 쓰는 달란트를 받았기에 같은 신앙으로 모인 우리가 그 달란트를 하느님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굳이 문학과 신앙의 상관관계를 말한다면 촛불과 심지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밝히는 초 한 자루도 심지가 있어 타오르듯이, 우리 영혼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신앙이란 심지가 있기에 근본적인 문학의 테마 또한 신앙적인 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재의 한계성에 꼭히 갇힐 수 만은 없기에 더러는 문학의 다양성 안에서 고뇌하기도 한다.

언젠가 청도 운문사에서 ‘처진 소나무’를 보고 문인의 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 소나무 위에 올라앉은 백학의 모습이라 해도 좋으리라. 문인의 자세는 바로 그러한 거송이 돼야하지 않을까. 고고한 기상을 품었으되 자태를 치켜들지 않고 품위를 지닌 날개는 땅을 향해 엎드림에서 고아한 문인의 품격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쓴다는 일이 천형이라 해도, 글이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창을 밝혀 한 마디 자구字句를 위해 씨름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순교’가 아닐까.

스무 해 성년의 나이를 자축하면서 문인이기에 앞서 신앙인인 우리가 혹여 본분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아왔는지도 반성해 볼 일이다. 이제 열아홉 번째 「부산가톨릭문학」 연간지를 내면서 성무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정기모임 때마다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승주 지도신부님의 사랑과,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우리 회원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축사

말씀의 실천자이신 여러분

황 철 수┃바오로

천주교 부산교구

 

 

 

 

 


저는 ‘가톨릭문인협회 기도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문인이기에 앞서 신앙인임을 더 깊이 새겨 아버지의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려 하나이다.’ 하는 구절과 ‘저희가 쓰는 글이 아버지를 증거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며 세상 복음화에 이바지하게하소서.’ 하는 구절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굳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진실을 캐고 세상의 악에 대항하며 불의를 개선해 나가려는 ‘인간의 참된 삶을 위한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곧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이 바라시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를 통하여 하느님 지으신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인간의 온갖 사상을 사유하여 미적인 감동을 자아내며, 소설을 통하여서는 인간의 온갖 삶의 진실을 밝혀 새로운 빛을 제시하며, 수필을 통하여 인간의 진실 된 삶을 증거 하기 때문에 문학을 하시는 분들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복음화에 가장 앞서가는 분들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 밖에 동시, 동화 등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신 소중한 어린이들을 찬미하고 있으니 이 또한 귀중한 문학의 한 방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열아홉 번째 소중한 문집 ‘부산가톨릭문학’을 만들어내는 부산가톨릭문인협회 여러분은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여 새로운 창조의 문을 열고 계시니 그 노고에 깊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인이라는 사실을 긍지로 삼되 세속적 허세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기도문의 말씀대로 하느님 대전에 겸손한 자세로, 가난과 정결로써 올곧은 삶을 창조해 내는 여러분의 노고와 열정이, 주님의 축복 가운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어, 험난한 우리사회의 소중한 양식이 되고 자양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시 한 번 ‘부산가톨릭문학’의 발전을 기리며 여러분 가정과 하시는 일에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감사 합니다.



❙격려사

그 순수함을 고마워하며

김 승 주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신부님, 저 본당에서 복사거든요. 저 시키실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의 말입니다. 부산가톨릭합창단원으로 있는 어머니를 따라 하계 수련회에 와서 자기도 뭔가 역할을 하겠다는 기특한 제안을 한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마당 한 구석에 세워져 있는 정자를 배경으로 제대를 차렸습니다. 푸른 풀밭위에 둥글게 모여선 합창단원들과 함께 어린이의 도움을 받으며 한창 진지하게 미사를 봉헌하는 도중, 어린이가 내 뒤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뭔가 일이 있었으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성체를 축성하고는 정성을 다하여 성체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 순간, 어린이의 입에서 “뎅~”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게 아닙니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미사를 계속하여 무사히(?) 끝까지 마치기는 했습니다. “뎅~” 소리를 들은 단원들 역시 끝까지 참다가 미사가 마치자마자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뎅~”소리의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복사가 살펴보니 자기가 쳐야 하는 종이 없었던 것입니다. 난감했던 어린이는 그 순간 정자 처마 끝에 달려있는 풍경을 보았고, 올라가서 그 풍경으로 종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다다르지 않는다고 판단한 단원이 정자에서 내려오도록 지시를 했고, 더욱 더 난감해진 어린이는 사제가 성체를 들어 올리자 입으로라도 종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입으로 낸 종소리, “뎅~”

우리 모두를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그 터져 나온 웃음 뒤에는 뭔가 따뜻한 느낌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수하면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어린이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부여받은 능력과 사명에 따라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로써 우리 삶의 자리를 맑고 밝게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부산가톨릭문인들의 역할도 그러합니다. 때때로 뜻하지 아니한 어려움 앞에 맞닥뜨리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닦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올 한 해를 살아오면서 알알이 엮어온 글월 가운데 소중한 몇 편씩을 골라 하나로 모은 올해의 책을 펴냅니다. 책임을 다하겠다는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열정을 담뿍 담고 있는 작품집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기쁨 함께 나누면서도 세상에 또 하나의 밝은 빛을 비춘다는 긍지에 가슴 뿌듯해집니다.

부산가톨릭문학 제 19집 출간에 힘써주신 회장님과 임원 여러분께 치하의 말씀 드리며 회원들의 협조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9년의 끝자락에 서서

지도신부 김승주



❙초대석 1

많이 알면 다쳐?!

김영곤시몬┃신부

오순절평화의마을 원장

 

 

‘그래 그래, 적당히 알아야지. 내 주제에 알면 뭐하나. 감만 잡고 말아야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안되지.’ 7월 어느 후원회 미사에 갔을 때 그 본당이 어수선해보여 마침 본당수녀가 있기에 물어보니 수녀 왈 ‘알면 다쳐요!’ 농담이지만 뭔가 석연찮다. 부정적인, 불유쾌한 일인가 보다. 말하기 곤란하거나 싫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무슨 일인지 알고 싶네. 사람의 호기심이 사람을 죽인다니까. 내가 너무 많이 아나?

그래, 그래서 국가나 회사나 어느 단체나 다 비밀이 있는거야. 특급, 1급, 2급, 3급 등으로 비밀을 분류하고 직급에 따라 비밀 취급이 제한되어 있고. 그런데 하느님에 대한 비밀은 어떠한가? 하느님은 그 비밀을 사람에게 알려 주려고 안달이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 사람이 알려고 해도 알려 줄까 말까한 특급비밀을 못 알려줘 안타까워하시는 하느님도 참 한심하시지.

그래, 사람들은 자꾸 뭔가를 숨기려 한다. 상대방이 모르기를 바라고 알려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알면 자기에게 어떤 손해가 온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말도 생기고 비밀을 아는 사람이 승리하거나, 그 비밀을 알았다는 이유 때문에 암살(?)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에 대한 비밀을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시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에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별로 알려하지 않으며, 그저 무심하게 지내고 있다. 하느님에 대해 알면 참으로 자신의 생활이 생명으로 가득 찰 것인데 말이다.

그래, 타인의 비밀은 알면 득이 될 때도 있겠지만 괴로울 때가 더 많은 법이다. 그 비밀은 알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에게 참으로 무거운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하느님의 비밀은 알면 알수록 가볍고 유쾌하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에게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라고 하시지 않는가?

그래, 남의 비밀을 알아 제대로 지켜주려 한다면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하느님의 비밀은 지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비밀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밀은 지켜야 하는 것인데, 그 비밀을 알려주어야 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것은 비밀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비밀은 신비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그래, 많이 알면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비밀이라면, 많이 알면 나를 다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비밀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에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다치기 때문이다. 그 분의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결국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 역시 그 구원의 길을 가야한다.

 

 

❙초대석 2

협조자로서의 소중한 만남

김 막달리스 수녀

원한도움의 성모수도회

 

 

가장 소중한 만남은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지난 2월에 한 수도자로서 새로운 소임을 받고 사목자의 협조자로서 반송성당 사도직을 시작하였다.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은 20년 전 동대신성당, 그리고 십여 년 전 영도 아이들의 집 공부방에서의 소임이 있었고 이번에 세 번째 사도직을 수행하게 되었기에 부산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짐은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우리들의 삶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연속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연한 만남이 될 수가 있고, 예리고 성문의 눈 먼 사람의 경우처럼 탄원으로 이루어지는 만남도 있고, 또 자캐오의 그것처럼 호기심 때문에 이루어진 만남,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서 사도 바오로가 겪은 것처럼 어리둥절한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몸 담고 있는 반송성당의 만남과 오래 전 본당에서의 소중한 만남이 있기에 산과 바다가 있는 부산은 내게 어머니의 품 같은 푸근한 곳이다. 지인들을 자주 볼 수도 없고 소식을 몰라도 그냥 마냥 좋은 곳이다.

특히 반송성당은 황금어장이다. 봉성체를 하는 분들이 사 오십여 분이 되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그에 못지않다. 독거노인,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 등등 매일 귀한 하느님의 보물을 만난다. 더러는 마음이 안쓰럽고 힘겨울 때도 있지만 예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그분들이 있어 늘 행복하기만 하다.

이런 만남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모든 삶을 공감할 수 있기에 성체의 신비라고 묵상해 본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자할 때 식탁을 선택하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식탁은 바로 상호간의 관계, 서로를 알고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 풍요롭게 해주는 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체성사는 이런 방법을 통하여 친교와 사랑의 뜻 깊은 표징이 되며 참된 인간의 행복과 우정의 맥락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만남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면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협조자로서 사목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까지 찾아가 보듬어드리고 기도와 봉사의 손길을 통해서 보람과 자부심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갈고 닦지 않을 때 그 빛과 소명을 다할 수가 없다.

조각가는 무심하고 투박한 돌덩이 속에서 이미 자신이 조각해야 할 상을 본다고 한다. 생각하는 모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내고 다듬는다고 했는데 인간 속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도 그런 것이 아닐까.

수도자요 협조자로서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주의 사상, 이런 것들을 쪼아내고 뜨거운 성령의 숨을 불어넣어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아픔도 상처도 치유되리라 믿는다. 경지에 도달한 도인이나 성인들도 보다 단순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경직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기에 현실을 직시하면서 소금의 짠맛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부끄럽기도 한 뉘우침의 생활이다. 오늘도 주님 부르심을 받은 협조자로서 성령의 도움을 청하면서 겸허하게 봉헌하는 하루 일과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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