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글 ]

 

<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7) >

 

조 광 우 (엘리야) 신부 / 부산본부 부본부장

 

지난 93,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앞두고 조금 이른 이민의 날 축제가 있었습니다. 부산 지역 영어, 베트남, 동티모르 공동체와 울산, 양산, 김해의 필리피노, 베트남 공동체들이 모두 참여한 큰 행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산 교구 내 이주 사목 연대 소속 여러 기관 소속이신 분들과 더불어 마산 교구 창원 이주민 센터의 신부님과 소속 구성원 분들도 손님으로 참여해주셔서 더욱 풍요로운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오전의 문화 부스 체험 프로그램에 이어 각 공동체의 전통적인 음식을 나눈 점심 식사, 그리고 각 공동체의 공연과 여러 언어로 봉헌된 미사로 구성되었습니다.

 

참가 예상 인원이 700여명으로 추산된 큰 행사였고,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날씨도 급변하여 우천으로 인해 장소의 변경이 불가피했지요. 하지만 30여명에 달하는 봉사자 분들이 기꺼이 함께 해주셨고, 각 공동체 소속 친구들도 예상 이상으로 잘 준비해주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즐겁고 복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우천이 예상되어 실내로 변경되어 아쉬웠지만, 오히려 실외의 따가운 햇살과 무더위를 좀 더 피할 수 있게 되어 더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한 데 모여 참으로 기쁘고 풍요로운 자리가 되었습니다.

 

여러 민족과 여러 언어가 모인 미사를 교구장 주교님의 주례로 봉헌하면서 큰 기쁨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여러 장벽들이 이 거룩한 미사 안에서 화합의 도구로 변화되었고, 오히려 이 미사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서로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 풍요를 이루었고, 서로 다른 언어가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라, 더 다양한 찬양을 이루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만남의 문화를 향해 우리 모두를 초청하셨지요. 그리고 그 만남의 문화의 표상으로 다면체의 표상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다름이 공존하는 사회의 표상이며, 우리 사회가 다름으로 서로 온전해지고 풍성해지며 서로를 밝혀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초대이지요. 이 시대에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수많은 분열과 혐오를 치유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담은 초대였습니다. 다른 인종, 다른 언어가 모여 이루었던 이 아름다운 축제를 거행하며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던 다면체의 표상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 보여준 봉사자분들과 참가자분들의 사랑과 열정 안에서, 우리에게 다면체의 사회를 향한 희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 희망의 씨앗이 크게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노동사목 이야기 ]

 

< 곁을 나누는 사랑 >

 

전 주 현 (율리안나) / 부산본부 노동안전팀장

 

무더웠던 여름 어떻게 보내셨나요? 몸에 열이 많은 저의 어머니는 이번 여름을 힘들게 보내셨답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발목에 붉은 종기가 올라와 점차 번지기 시작해 양 발목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어머니는 휴식시간에 가게 창고에서 낮잠을 주무시는데 그곳을 지나다니는 벌레에 물린 듯했습니다.

 

부모님은 20년 넘게 만물상회를 운영하셨습니다. 각종 가전제품 및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전자상거래의 발달에도 유일하게 시장 내에서 버티고 있는 가게입니다. 성인이 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부모님이 어떻게 일 하시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이전 주인이 사용하던 에어컨 달려있는 창고가 유일했습니다. 창고에는 10년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은, 묵은 먼지가 뒤덮인 물건이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제 검지 크기의 바퀴벌레가 구석을 기어 다녔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벽지를 타고 올라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휴식을 취했으니 몸이 성할 리 없습니다. 버려야 할 물건을 옮기고 바닥의 먼지를 닦아냈습니다. 정리를 끝내고 달라진 공간을 확인한 부모님은 딸을 키운 보람을 느끼셨는지 뿌듯해 하셨고, 더위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가게에 놀러 가곤 했습니다. 제게 그들의 노동은 숨 쉬는 것과 같이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키워주신 것에 감사했으나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여름 중 가장 더운 며칠을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도 시장의 장날과 겹치면 반납할 정도로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바라본 아버지는 볼이 폭 패인, 머리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동년배 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남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해방을 외치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암울한 미래를 미리 걱정했고, 우울했습니다. 무력감에 짓눌려 시야가 가려져 갈 때 부모님의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소중한 이도 챙기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도 해낼 수 없음을 느낍니다. 제가 지금 구해야 할 것은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무더웠던 여름날의 땀방울을 통해 알아갑니다. 또한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 중대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만날 때 저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스스로 단정 짓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곁을 지키고, 기도 해주는 것부터 하나씩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위기의 시대 속 고통 받고, 쓰러진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의 아픔을 헤아리고, 보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픈 이들의 존재를 알아가고, 깨어 있으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과 곁을 나누는 사랑부터 시작 해 보면 어떨까요?  또한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품을 가진 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 이주사목 이야기 ]

 

<“Living with Perseverance, My 2nd Chance in Korea”>

 

HICBAN GEORDE / 김해영어공동체

 

I was born in Manila and raised in Samar, in the province of Visayas were I was graduated from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 Before I continued my college degree, I had to stop for four years due to financial reason and worked to support my family. It was year 2012, when I started my journey in College at the Divine Mercy College in Caloocan City, Manila. It is a Catholic School, we had Values Education and Bible Teaching subject wherein I had explored and learned more about Catholic Tradition and Teaching. I love the core purpose of our school, they taught us how to became a better person, to have a strong faith to God and help me to understand my purpose in life. During College I encountered many challenges especially when I was on my 3rd Year, when I became a working student, I had to worked in a fast-food company to support my studies, it was not easy but I am decided to keep going to continue my studies because I know that God is with me always and I have a purpose in life for my family to give them a better future. Every Friday and Saturday I came to church in Quiapo Manila and every Sunday I came to church near my house, since then I know that the church is a place close to my heart.

Year 2019, During pandemic I was in the Philippines that time, I feel so down and lost, I had nothing to do, everyone was not allowed to go out, I had no worked and my money from my savings account is run out. No one knows when the pandemic would be stop. I always pray to God that “Lord please give me a 2nd chance I want to go back to South Korea to have a new beginning.” I don’t see any future here in the Philippines. I am the only child of my parents that’s why I want to give them a better life.

I am decided to worked overseas again and search for a better opportunities. Until I saw the news that Registration for exam in Korea was open again. I am still hoping for going back to South Korea to work so I registered and took the exam. During the examination day, I had to sleep at my relative’s house and while I was going to the examination venue my shoes got broken, I tried to look for a new one unfortunately I can’t afford to buy one, so I decided to use it anyway and take the exam, it was a very memorable experience. And I am so thankful I passed the exam.

And Finally I was able to came back to Korea again, I feel so lucky, after all the trials and pressure I been through I got the best result. Trust God and he will do the best on what you want, put all your Plans on him. And now I am volunteer and a member of choir at Gimhae Catholic Church (English Mass). God is Good all the time.

 

< "인내심으로 살아가기, 한국에서의 두 번째 기회" >

HICBAN GEORDE / 김해 영어 공동체

저는 마닐라에서 태어나 비사야 지방의 사마르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학위를 받기 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4년 동안 휴학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했습니다. 제가 마닐라 Caloocan City에 있는 Divine Mercy College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12년이었습니다. Divine Mercy College는 가톨릭 전통과 가르침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가치관과 성경교육 과목이 있는 가톨릭 학교입니다. 저는 우리 학교의 핵심 목표를 좋아합니다. 학교에서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 하느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는 방법, 제 삶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직장인이 되어 패스트푸드 회사에서 일하며 학업을 이어가야 했고, 쉽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항상 저와 함께 계시고 제 가족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려는 삶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마닐라 퀴아포 교회에 갔고, 일요일마다 집 근처 교회에 갔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가 제 마음과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9, 팬데믹 기간 동안 저는 필리핀에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너무 우울했고, 길을 잃었습니다. 할 일도 없었고, 모든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일도 하지 않았으며 저축 계좌에 있는 돈이 바닥났습니다. 전염병이 언제 멈출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저는 늘 하나님께 주님, 제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어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유일한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더 나은 삶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시험 접수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보기 전에는 다시 해외에서 일하며 더 나은 기회를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등록했고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 당일은 친척 집에서 자야 했고, 시험장으로 가던 중 신발이 망가졌는데 신발을 살 여유가 없어 망가진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 신발을 신고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답니다. 정말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다시 한국에 왔고, 그 모든 시련과 압박을 겪은 끝에 최고의 결과를 얻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그 분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계획을 그 분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지금은 김해성당(영어미사) 성가대원으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노동과 법]

 

< 최저임금 유감 >

 

전 시 춘 (율리오) / 노동법 교수

 

최저임금법에서는 매년 85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을 결정하여 공표하도록 되어 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최저임금 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대로 결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 것인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의결에 좌우된다.

 

최저임금 수준을 사실상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 단체가 추천하는 근로자위원, 사용자단체가 추천하는 사용자위원, 정부에서 임명하는 공익위원 각 9명씩 같은 수로 구성되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지난 85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4년도 최저임금을 시간급 9,860원으로 결정하여 공표하였다. 내년 최저임금 최초 안으로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여 9,620원을, 노동계는 26.9% 인상한 12,210원을 제시하여 2,590원의 격차가 있었으나 여러 차례의 수정안으로 격차를 줄이다가 10차 수정안으로 경영계는 9,840, 노동계는 10,020원을 제시하여 양측의 의견 차이는 180원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9,920(종전 최저임금보다 3.12% 인상)을 중재안으로 제시하여 경영계와 노동계의 합의를 요구하였으나, 노동계를 대표하는 일부 위원들이 중재안을 거부하는 함으로써 공익 중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11차 최종안으로 경영계는 9,860원을, 노동계는 10,000원을 제시하였으나 양측이 서로 거부함에 따라 공익위원을 포함한 최저임금위원회의 전원회의에서 경영계 최종안(9,860)과 노동계 최종안(10,000)을 두고 투표를 실시하여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경영계 최종안(9,860)2024년도 최저임금 안으로 의결되었다. (아래 도표 참조)

 

최초안

<중략>

10차 수정안

공익중재안

11차 최종안

경영계

9,620(동결)

 

9,840

9,920

9,860

노동계

12,210

 

10,020

10,000

 

필자는 먼저 2022년도 물가 상승률이 5.1%임에도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인상률(2.5%)은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것이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더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2024년 최저임금이 9,920(공익중재안)이 아닌 9,860(경영계 최종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10차 수정안부터 검토해 보자. 10차 수정안에서 경영계(9,840)와 노동계(10,020)의 의견 차이는 180원에 불과하였다. 이 시점에서 공익위원의 중재안인 9,920원이 제시되었으나 노동계의 반대로 중재안이 채택되지 않았고, 마지막 회의에서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들이 경영계의 11차 최종안에 찬성함으로써 최저임금은 공익위원의 중재안보다 60원이 낮은 9,860원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 결정은 제로섬 게임 방식으로 전개되는 협상 과정이다. 제로섬 게임 방식에서는 상대방의 일방적 양보는 없다. 제로섬 게임 방식과 같은 협상에서 결과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 중재기관이나 중재인을 두는데,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공익위원이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다. 중재기관이나 중재인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지만 이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성향 상 약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데,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경영계 편으로 약간은 치우쳐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왜 근로자위원들은 공익 중재안(9,920)을 수용하여 합의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경영계 최종안(9,860)이 채택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투표를 선택하였을까?

 

만약 근로자위원들이 공익 중재안에 찬성하였더라면 최저임금은 60원이 더 인상되었겠지만 강경파 근로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것을 예상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전체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을 조금이나마 더 올려주는 것이라면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니었을까.

 

묻고 싶다. 이 글을 통해. 근로자(또는 약자)를 위하여 활동한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근로자(또는 약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가?”.

 

어쨌든 내년에 있을 2025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협상에서는 9,920(채택되지 아니한 공익 중재안)이 아닌 9,860(2024년 최저임금)이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 지난달 한 일 ]

 

생명·안전 개악 저지를 위한 선전전 (9/13)

 지난달 한 일 1 - 사진.jpg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고 노동자의 생명·안전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DL이앤씨 공사 현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이 현장에서 지난 81120대 하청 노동자가 창호 교체 작업 중 떨어져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DL이앤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근로자 사망사고가 많았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신속한 수사와 철저한 책임 규명,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가 지켜졌다면 가난 속 꿈을 향해 나아가던 청년의 억울한 죽음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관심 가져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9·23 기후정의행진 (9/23)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하루 앞둔 23일 토요일 오후 서울은 세종로, 부산은 송상현 광장에서 기후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핵 발전·화석연료에서 공공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철도민영화 중단·공공교통 확충· 이동권 보장 등 5개 요구안을 정부에 요구하고, 기후위기의 불평등을 넘어서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함께 행진했습니다.

 

이 외 활동

9/3() 2023 이민의 날 축제 /

한국외방선교수녀원 피정의 집,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정 대성전

9/4() 스텔라데이지호 재판 / 부산 지방법원

9/5()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9/6() 노동사건 지원 / 대한법률구조공단 김해지소

노동사건 지원 / 부산 지방법원

9/7() 의료지원 / 부산의료원

9/9() 차별철폐금지법제정 부산연대 워크샵 / 민족예술인 총연합 사무실

9/11()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 / 가톨릭센터

9/12()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부산운동본부 회의 / 민주노총

9/13() 생명안전개악저지 선전전 / DL이앤씨 공사 현장 앞

의료지원 / 부산대학병원

9/14() 의료지원 / 부산대학병원

9/18() 노동자·활동가 심리치유모임 / 노동사목센터

9/19() 기후정의행동 기자회견 / 시청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9/20() 20233분기 사무국 회의 / 노동사목센터

2023 반핵 아시아 포럼 / 초량 항일거리

노동사건 지원 / 부산 지방법원

9/21() 바자울 미사 / 노동사목센터

9/22() 정의평화위원회 / 가톨릭센터

의료지원 / 부산대학병원

9/23() 9·23 기후정의행진 / 송상현 광장

9/24() 2023 하반기 김해 노동법 교육 / 김해성당

9/25() 노동사건 지원 /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지청

9/26() 부산 중대재해처벌법 1호 재판 기자회견 및 방청 / 부산 지방법원

노동공제연대회의 / 부산 이동노동자지원센터 해운대쉼터

9/28-30(-) 부산 베트남 공동체 소풍 / 경남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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