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글 ]

 

눈물로 씻긴 눈으로

 

TRAN QUOC PHONG (요셉) 신부 / 부산본부 베트남공동체 담당

 

꽃샘추위가 지나 완연한 봄이 찾아와 봄꽃인 진달래와 철쭉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살던 베트남보다 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봄꽃이 피어나고 식물들이 되살아 나옴을 보면서 회복과 생명력에 대해 새롭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뜻깊게도 식물들과 꽃들이 피어나는 봄 가운데에, 우리는 전례력에 따라 부활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부산에서 첫 부활을 맞이하며 저는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이십니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젊게 되고 새로워지며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시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젊은이인 그분께서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봄이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수많은 사람들 부활의 기쁨, 봄의 따뜻함, 꽃들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튀르키에와 시리아 지진에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전쟁 속에 2년째 고통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없거나 박해로 인해 미사가 없거나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에 불안 속에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힘들어하는 많은 젊은이와 노동자들, 그리고 단속으로 인해 보호소에서 지내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부활 주일에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달려갔던 시몬 베드로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고, 무덤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과 아마포가 따로 놓여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왜 시몬 베드로는 그 제자처럼 빈 무덤을 봐도 믿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당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예수님을 고난과 죽음으로 내몬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았고, 함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 시몬 베드로처럼 지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원인들로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특히 심한 단속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미등록 체류외국인들입니다.

지난번 차에 함께 탄 베트남 젊은이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길가에 피기 시작한 벚꽃을 보고저는 벚꽃이 많이 피어있을 때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는데, 그 젊은이는 신부님! 지금 단속이 심한데, 저희가 어떻게 소풍을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희 베트남 공동체 친구들과 대구교구 이관홍 신부님의 글이 떠올랐고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단속에 대한 걱정으로 봄의 상쾌한 날씨, 봄꽃의 아름다움, 또한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미등록 체류외국인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하게 지내고 있을까요?

이러한 가슴아픈 상황속에서 우리 모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던 교회의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교회의 젊은 자녀들이 겪고 있는 이 비극 앞에서 우리 교회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비극에 결코 익숙해져서는 안됩니다.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75)

교황님께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특징인 이민라고 말하였듯이 이민과 이주는 우리 사회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미등록 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부의 정책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고 해결할수도 없지만,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성은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황님께서 강조하신것처럼 동정심과 이해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봄의 따뜻함을 누릴 수도 없고, 봄꽃의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도 없는 현 미등록 체류외국인들의 두려움과 불안, 답답함에 대하여 우리는 이해하고 아파하며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우는 법을 모를 것입니다. 삶의 어떤 현실들은 눈물로 씻긴 눈에만 보입니다.”(Christus Vivit, 76)

 

[ 이주사목 이야기 ]

 

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모든 꿈은 이뤄질 수 있다
 

 

방주희 (안젤리카) / 김해영어공동체

 

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모든 꿈은 이뤄질 수 있다라는 말이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계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겉으로는 해맑지만 마음속은 항상 걱정이 많아 스스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적이 있으신가요? 인생에는 친구가 다가 아닌데 왠지 혼자이기 싫어서 항상 웃으며 괜찮은 척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바쁜 일상을 살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색해 할 수밖에 없었죠. 이로 인해 저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우울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이를 보신 어머니는 뭐 사춘기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저 혼자 자책하는 것을 보시고 많이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제게 함께 영어 미사를 가보자고 권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인을 만나는 것도 어색했고, 특출나게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이것 또한 경험이라 생각해서 처음 가족들과 함께 영어미사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영어를 잘하셔서 다 이해 하셨고 저희 오빠는 어느정도 알아듣었고 저는 많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성당의 외국인분들은 제 어색함과는 상관없이 제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사실은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시긴 하셨지만) 남녀노소 상관없이 저를 둘러싸고 말도 걸고 장난도 치면서 편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영어미사를 자주 가게 되었고, 가면 갈수록 저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셔서 왠지 모를 자신감? 자존감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아 모두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자 하기 보다는 나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해이주사목 영어미사에 참여하고 성당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특히 저희 어머니와 베로니카 선생님 같은 한국분이 계셔서 공감도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영어미사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영어미사 복사단과, 무료진료소 등에서 봉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신다면 모든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이야기 들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노동사목 이야기]

 

<다음 소희> 우리의 이야기

 

전 주 현(율리안나) / 부산본부 노동안전팀장

 

20232월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지난 2017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LB 휴넷)에서 해지방어(일명 '욕받이 부서') 일을 하다 스트레스와 실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홍수연 씨(작중 소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로 값싼 노동력으로 고용되어 착취당하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실태가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습니다. 소희의 일이 모두가 한 번쯤은 겪었을 일이라 생각되었고, 제 남동생과 저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제 남동생은 특성화고는 아니지만 부산 내 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하며,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으로 공장에 파견되었습니다. 동생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이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의 기술과는 관련 없는 단순 작업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 동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취직, 9급 공무원 합격 등 반에서 1~2명만이 가능한 일은 동생에게 일어나지 않았고,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던 어느 날, 동생은 자신이 루저 같아 보이지 않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중견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영화 속 소희처럼 부당한 임금은 아니었지만, 고객과 최전선에서 마주하며 감정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정신병원으로 보낸다는 등의 협박을 하는 고객에게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기억, 이미 수령한 제품을 반품하겠다는 고객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울며 빌었던 기억들은 지금도 일상생활 중에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회사는 실적은 물론, 최상의 고객만족 점수도 요구했습니다. 8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발생 사유에 대해 팀장, 점장, 본사에까지 보고해야 했습니다. 전월 실적이 좋아도 당월 실적이 좋지 않으면 부진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매달 이어지는 실적부진자 회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반성하고 괴롭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 살지 않으면 이런 하루가 반복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영화 속 소희가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생을 마감한 이유는 이곳을 벗어나도 달라지는 것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해지고 싶어서 빛을 따라 걸어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보게 됩니다.

 

저와 제 남동생은 영화 속 소희처럼 감정노동자이자 현장실습생이었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1년 내놓은 감정노동 제도화 현상과 개선과제 검토이슈페이퍼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10명 중 4명은 감정노동 업무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화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이 하루 업무 중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자가 600만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있지만, 휴게시설 설치나 회복 프로그램 운영 같은 보호 조치를 이행하는 사업장은 1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직업계고 학생은 원하는 실습에 참여할 권리, 학습권, 노동권, 건강권 등을 침해받고 있습니다. 현장실습생은 교육훈련과정이라는 제도의 설명과 달리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 업무에 투입은 물론, 장시간 노동과 위험 및 기피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2022년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 개선 방안 마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담 기업 현장 교사를 배정할 수 없는 여건인 5인 미만 영세사업체로의 현장실습도 15%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업체 점검에 참여한 노무사는 문제사업장을 목격해도 역할과 권한의 벽이 높아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음을 토로했습니다. 이는 현장실습은 물론 채용 전환 이후 크고 작은 부상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집니다.

 

정부는 현장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해야 움직입니다. 하지만 대책 방안을 세우는 척하다 대중의 이목이 줄어들면 손 떼고 모르는 척 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희생된 피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기억하여 더 이상 한국 노동 사회에 다음 소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감정노동자도 현장실습생도 모두가 낭떠러지가 아닌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소희>의 날갯짓이 부디 꾸준한 파장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노동을 향한 눈빛]

 

양산 필리핀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며

 

김진호 (바오로) 신부 / 해운대성당 보좌

 

저는 몇 년간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방학 때가 되면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여러 한인 커뮤니티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비교적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현지 본당을 빌려 쓰면서 현지인들이 본당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가까스로 미사를 봉헌한다거나, 본당 건물이 마련되어 있어도 건물 관리에 어려움을 겪거나, 현지 문화 안에서 자라고 있는 2세들에게 제대로 신앙 교육을 해 주지 못하는 등의 사례를 여럿 접했습니다. 이러한 현실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아셨는지, 미국 신학교의 교수 신부님들께서는 제게 종종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곤 했습니다. 교포들의 현실을 체험하고, 교수 신부님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저는 국내에 있는 이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키워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품을 받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 한 달에 한 번씩 양산 성당의 필리핀 공동체 미사를 집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이 앞섰습니다. 저 자신이 그 신학교에선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또 본당에 발령받고 미국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에서 이리저리 시도하다가 여러 차례 벽에 부딪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받았던 이 부탁은 제가 교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방법으로 느껴졌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영어 미사를 연습하고, 강론도 써 보며 미사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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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봉헌하는 날이 되고, 해운대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양산성당 필리핀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지 않은 인원이고, 전례 기물들도 다소 초라한 모양새였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 진지하게 전례를 준비하고 자국의 성가를 힘차게 부르는 모습을 보며, 이곳이 그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동참하고자, 진지하게 미사를 봉헌해 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선배 신부님들 중 한 분께서, 사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아직 제가 그들과 함께 살고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에 한 번뿐인 만남도 그렇고, 미사 앞·뒤로 바쁜 주일 일정으로 인해 그들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발길을 재촉하는데 마음이 앞섭니다. 그분들께도 분명 여러모로 어려운 점들이 있을 텐데, 또 나누고 싶은 삶의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때 미국에서 만났던 현지 본당 신부님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빽빽한 한 주 동안 강론을 하나 더 작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해운대에서 양산까지의 이동 거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우분들께는 저 오늘 해운대성당 양산공소 다녀와요~’ 하면서 웃어넘기고 있긴 합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며 인사라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주님의 은총으로 느껴집니다. 제 작은 노고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선물인 듯도 합니다. 주님의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집회 35:13)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와 동시에 문득 서품예식에 있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존경하는 주교님,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는 주교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사제로 서품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필리핀 공동체 또한 저를 위해 서품을 청원해 주신 분들입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봉사의 기회를 주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노동과 신앙]

 

영원 안에서의 노동 : 노동의 본질은 임금노동이 아니다.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 / 부산본부 본부장

 

영원 안에서의 노동 : 노동의 본질은 임금노동이 아니다.

 

임금노동은 일종의 매춘이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임금 노예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더 높은 임금을 위해서만 투쟁하지 않았다. 노동 자체의 변혁을 위해서, 노동자들이 그들의 생산물의 사용 가치를 알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고, 노동 현장에서 지식을 얻고 넓힐 기회가 있는 의미 있는 활동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바꾸기 위해서 그들은 싸웠다. 우리가 알듯이 임금노동 체계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임금노동의 규칙에 적응해 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극히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신학자 도로테 죌레입니다. 그녀는 사랑과 노동- 창조의 신학에서 인간(노동자)이 산업 사회에서 어떻게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임금체계를 감수하며 살아갈 수가 있고,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이러한 체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죌레의 답은 종교입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하길, 개신교 노동윤리에 의하면 노동은 하느님의 소명이며, 하느님의 충실한 종은 이러한 소명을 성실히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 실질적인 표징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보상하십니다. 죌레는 노동=하느님의 소명’, ‘임금=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베버의 주장을 인용하여 결국 이러한 노동윤리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이러한 영향력은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죌레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인간 노동이 마치 임금노동으로 환원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그의 비판에는 동의합니다. 물론 노동과 임금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노동의 정당한 결실로서의 임금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 나아가 그 임금이란 단순한 교환의 법칙을 넘어 사회정의의 기준으로 책정된 적정한 임금, 자신과 가족 모두가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주장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02~303).

 

그러나 노동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 노동이 곧 임금노동이라는 정의를 뛰어넘습니다. 즉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습니다(노동하는 인간, 12). 인간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 노동은 인격적인 행위(간추린 사회교리, 271)입니다. 인간은 주체로서 노동하는 인간이지, 생산과 이윤 창출을 위해 객체로서 노동하는 노예가 아닙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영·육의 완성과 함께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 노동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창세 2,15)

 

인간 노동의 본질적인 성격은 하느님의 말씀에서도 드러나듯이 일구고 돌보는 노동입니다. 성경에서의 노동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의 좋은 의도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이의 행복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구원사업에 참여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행복을 선사하시듯이 우리는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노동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하는 노동이 행복과의 간극이 크다면 지금의 노동은 그 본래적 의미와는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회교리에서는 매우 간략하게 정의합니다. “노동의 주관적 차원은 객관적 차원에 우선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71). 객관적 차원의 노동 즉 물질적 결과물(상품, 이윤, 임금 등)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교회가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인간이 노동으로 하느님의 창조·구원 사업에 협력한다고 할까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창세 1,1. 4b-5a.)

 

하느님의 창조는 시간(time) 안에서가 아니라, 영원(eternity)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이루어집니다.’라고 현재형으로 쓴 이유는 하느님의 창조는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노동(창조)이 이제 영원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2. 14.)

 

영원 안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시간 안으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를 조금 과감하게 표현한다면 이러합니다.

 

영원이 시간이 되시다.”

 

예수님께서 시간 안에서 활동하셨지만, 그분의 활동은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원 안에서의 활동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활동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노동(활동)은 바로 인간 구원행위였고, 여기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63; 요한 17, 4. 18. 참조). 그리고 우리는 노동을 통해 그분의 구원 활동에 동참합니다. 결국 인간 노동은 바로 하느님 창조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인 것입니다. 인간 노동은 근원적으로 거룩한 행위입니다. 비록 인간이 시간 안에서 노동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부합할 때 그 시간적 노동은 영원 안에서의 노동인 것입니다.

 

죌레는 자신의 책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붙은 다음의 글을 인용합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이 만약 임금과 이윤, 인간 노동의 상품화와 부품화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의 생존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그것이 노동의 의미와 가치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노동의 본래 의미를 잊으며 살고 있지 않나요?

 

 

[ 전국 신학생 연수 ]

 

 

전국 신학생 연수 - 사진.jpg

 

[ 일과 시선 ]

 

< 평화 >

 

장영식 (라파엘) / 사진가

 일과시선 - 사진.JPG

[ 지난달 한 일 ]

 

노동권익위토론회 (03/23)

지난 324일 부산시의회에서는 <부산광역시 노동정책 평가 대시민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부산시와 노동권익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부산시의 노동정책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운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부산지역의 고용률은 낮은 수준이며 이는 2000년 이후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청년고용률도 가장 낮은 수준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임금수준이 낮고 노동시장이 짧아 고용의 질도 나쁜 수준을 보이며 특히 여성비중이 높은 서비스업에서 고용의 질이 매우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동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정책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부산 지역 노동정책의 올바른 수립과 운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지난달 한 일 2 - 2023년 국내이주사목 전국 실무자연수.jpg

국내이주사목 실무자 연수 (03/29~30)

2023년 국내이주사목실무자연수가 제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에서 이뤄졌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이주사목을 하고 있는 모든 실무자들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연수는, 각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는 직능별 모임을 도입해 다문화, 난민, 이주노동, 행정 등의 업무별 실무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주교부산교구노동사목은 이주노동에 대한 직능별 모임에 참여하여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들에 대하여 논의하며, 이주노동자들을 사목적으로 돕기위해 서로의 정보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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