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글 ]

  공동선 사회를 지향하며

 이 영 훈 (알렉산델) 신부 / 부산본부 본부장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루카 15, 3-4)

효율과 능률을 강조하는 자본사회 안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손실을 채우기 위해 99개의 이익을 방치한다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료가 있다는 가정하에서는 그럴만한 도전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무모한 결정이자 행동입니다. 우리는 공리주의 사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가치와 다수결이라는 방식을 더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공동선의 사회입니다. ‘단 한 사람의 행복과 안전이라도 무관심으로 배척당하지 않는 사회, 그래서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모두가 위험과 희생을 함께 감당할 수 있으며, ‘단 한 사람의 생명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사회입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세월호 그리고 이태원 등.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건설 현장, 공장, 길거리 등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가는 것을 매일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안전불감증, 인재(人災),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말하며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지만 변화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매번 끝났습니다. 공동선이 아니라 공리주의적 사고가 너무나 공고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적자생존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사는 세상,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희생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변명의 시대, 그리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인간 생명조차 쓰고 버리는 부속품회계장부의 숫자취급하는 맘몬() 숭배와 같은 반복음적 문화가 신앙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형제자매들의 고통으로 힘든 한 해였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나은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 노동사목 이야기 ]

2022년 노동사목과 함께한 기억들

  편집부

 

함께 투쟁한 순간들

중대 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부산운동본부

가톨릭노동상담소는 중대재해 없는 부산운동본부와 함께 매달 발생한 중대재해를 확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겨우 발의되고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유명무실한 법으로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기업들에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산재 사망이 발생한 사업체가 솜방망이 처벌받지 않도록 피해자 가족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20173월 발생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22명 선원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와 선전전과 공판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31일에는 경동건설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정순규 노동자의 3주기를 기리는 추모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또한, 당일 저녁 서면에서 산재 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행사를 진행되었습니다. 생명 존중이 전혀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갈아 넣으며 일하는 노동자가 너무 많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습니다. 노동자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는 가톨릭노동상담소가 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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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 인권

교회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지난 118일 학교 밖 청소년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위로와 격려보다 착취를 당하며 다루기 쉬운 도구로 취급되는 청소년 노동자가 많습니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 노동권익 보호체계의 현황과 개선방안이 논의 되었으며,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자리, 인턴십 프로젝트의 사례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일하는 청소년이 증가하면서 중앙과 지자체에서의 청소년 노동권익 보호체계 강화 필요성과 배달, 비공식적, 단기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노동에 종사하는 청소년에 대한 보호체계 마련도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토론회를 들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안전한 일자리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꼈습니다. 저희는 현재 부산 청소년 노동 인권 네트워크 연대체와 함께하며 부산교구 내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이 일하기 전 자신의 권리를 알고 안전한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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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

부활절

2022417일 노동사목은 영어, 베트남, 동티모르 공동체가 부활 미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함께 지원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가톨릭으로 하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어 공동체는 이번 연도에 노동사목 부본부장으로 새롭게 와주신 조광우 신부님과 함께 성삼일 미사와, 부활 밤미사, 부활미사를 보냈습니다. 이 기간에 이주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산업현장에서 누적된 피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신앙심은 꺾을 수 없었습니다. 각종 제조공장, 화학공장에서 피로가 쌓여 지친 몸을 이끌고 왔어도 이들은 마음속에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사목은 코로나의 확산세를 방지하기 위하여 각 공동체에게 계란과자를 선물로 나누며 행복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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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티모르 가톨릭 공동체 가정 돌잔치

매월 1회만 있는 동티모르 미사에서는 노동 사목 센터에 오는 동티모르인들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노동 사목은 40명 정도 되는 미사 참례자들을 돌보고 지원하며, 각 가정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7월에는 동티모르 가정 중 2가정의 아기들이 첫 돌을 맞이하는 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노동 사목은 동티모르 미사를 담당하시는 마르티노 신부님과 2가정의 아이들을 위하여 작은 이벤트와 함께 미사에 참석한 인원들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티모르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연락을 통하여, 주변의 많은 동료를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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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웃팅

코로나 확산세가 줄어들고, 야외의 마스크 규제가 풀리면서 노동 사목은 그동안 성가대와 성가도 없이 조용함 안에서 미사만 마치고 서로의 안부도 묻지 못하며 돌아가는 상황에 아주 아쉬워했습니다. 지금껏 겪었던 그들의 아쉬운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부본부장 조광우 신부님은 양산부산에 있는 가톨릭 영어 공동체에 대한 여름 소풍을 계획하고 대형버스 3대를 빌려 거제도에 있는 흥남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각 공동체는 음식을 챙겨와 서로 나눠 먹었습니다. 뜨거운 파라솔 밑에서 함께한 미사는 더워서 힘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모두가 타지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음을 잊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아이처럼 뛰어놀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이 한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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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나눔의 순간들

노동 사목에 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기부하는 감사한 단체들이 있습니다. 노동 사목은 각 단체와 기관에 생필품을 받으면 일정에 따라 부산양산웅상 지역에 이주노동자 중 필요한 가정에 나눔을 실시합니다. 노동 사목에 이주노동자 공동체의 각 가정을 위하여 생필품을 선물해주신 단체와 기관에 감사드리며, 매월 바자울을 읽어주시는 소중한 구독자분들에게 2022년 이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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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월 웅상 선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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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월 양산 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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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양산 유아 옷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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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월 부산 유아 옷 나눔

[ 이주 사목 이야기 ]

How Korea strengthened my faith

Peter Marin Epona / GCMC

 

I am Peter Marin Epona from the Philippines and I am a proud overseas Filipino worker.

The night before my scheduled flight, me and my wife were talking about our inspiration as to why we came up with the decision of me working abroad. We simply just wanted a simple house, enough savings and a small business to carry us through in the future. And on March 13, 2018, I left the Philippines for South Korea carrying those dreams with me.

Its just a bus ride away to Gimhae Catholic Church from where I worked. I served there as an altar server every week. On August 31, 2019, I was released from my previous work because my body suffered from all the smoke I inhaled while working. With Fr. John and Imo Magdalena's help and guidance, I was able to find a new job .

Due to my new work place being somewhat far from the church, I wasnt able to serve there like i used to. And because of the pandemic that hit the whole world, the company I work for wasnt saved from getting a hit. As all of us know, all of our dream and aspirations are, sometimes, hard to achieve and we will definitely face hardships and obstacles along the way. In my case, I was hospitalized for a week because of low potassium level. But with the help of the company and with the prayers of my loved ones, I was able to recover. Despite all that, I still really tried my hardest to provide for my family and sustain the expenses on the on going construction of our house. And I awe everything to the Lord.

So to my fellow OFWs, let us not forget to take care of ourselves too while taking care of our families. We should prioritize our healths too.

Now with almost everything going back to normal, despite the distance from where I work, I really try my hardest to attend masses regularly to be able to thank and praise God for everything that he has blessed me. And I also regularly pray the Rosary. Because I believe that with God's grace and the intercession of our Blessed Mother, Mary, we will be able to achieve all of our dreams.

 

한국이 나의 믿음을 어떻게 강하게 했는지에 대하여

  피터 마린 에포나 / 김해 이주노동 사목 필리핀공동체

저의 이름은 피터 마린 에포나이고 자랑스러운 필리핀 이주노동자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저와 제 아내는 제가 해외에서 일하기로 한 영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단순한 집, 충분한 저축,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작은 사업을 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313, 저는 그 꿈들을 가지고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 김해성당까지 버스로 가는 길은 당시에 짧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매주 그곳에서 미사와 전례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2019831, 저는 일을 하면서 들이마신 연기 때문에 몸이 아파 전 직장에서 퇴직하여 무기력한 와중에 요한 신부님과 막달레나 이모의 도움과 지도로 저는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새 직장이 성당과 다소 멀어 예전처럼 미사를 드리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전염병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고, 나아가 제가 일하는 회사 또한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우리의 모든 꿈과 열망은 때때로 성취하기 어렵고, 각종 어려움과 장애에 직면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칼륨 수치가 낮아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도움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로 저는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족을 부양하고 집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주님의 모든 것을 경외합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함께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을 돌보는 동안 우리 자신도 돌보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우리도 가족뿐만이 아닌 자신의 건강을 우선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거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서, 제가 일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여 하느님께서 저에게 축복하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저는 정기적으로 묵주기도를 드립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받은 어머니 마리아 님의 중재로 우리의 꿈을 모두 이룰 수 있다고 강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향한 눈빛]

 

베트남 순교 성인들을 모시고 있는 써 끼엔 성당

 

 

차 광 준 (다윗) 신부 / 임호성당 부주임

써끼엔(Sở Kiện) 성당은 하노이 교구 소속의 성당으로서, 하노이(Hà Nội)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하남(Hà Nam) 지방에 자리하고 있다. 써끼엔 성당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성당 일뿐만이 아니라, 특별히 베트남의 순교자들의 유물과 박해 도구 등을 전시하는 순례지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석회암 산으로 둘러싸인 다이(Đáy)강을 따라 위치하고 있어, 19세기 베트남 정부의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기에, 북부지역 신앙인들에는 아주 소중한 피난처가 되어준 성당이었다.

 

18771025일 푸지니어 프억(Puginier Phước, 1835-1892) 주교의 지시에 따라 고딕 양식의 대성당(길이 67.2m, 너비 31.2m, 높이 23.2m)이 건설 되었고, 18831월 준공되었다. 써끼엔 성당은 대부분의 서양식 교회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성인들의 삶을 주제로 하는 스텐인드 글라스 창문이 인상적이고, 황금색으로 칠해진 제대와 나무 제단이 아주 인상적이다. 성당 건물 앞에는 종탑이 있는데, 높이가 27m이며 네 개의 종을 매달고 있다. 가장 큰 종의 무게는 2,461Kg이고 가장 작은 종은 318Kg이다. 종소리가 울렸을 때 마을 전체에 그 소리가 멀리 울려퍼진다고 한다. 그리고 성당 구역은 총 9헥타르에 달하여, 부지 내에 주교님들의 묘지터도 마련 되어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규모의 성당은 인도 차이나 지역에서 가장 성대한 건축물이었으며, 1924년 하노이 주교관이 마련되기 전까지 주교좌 성당 역할을 해왔다. 당시 선교 사업을 위해 성당 부지 내에 인쇄소를 마련하여, 성경을 비롯하여 100개 이상의 교회 서적과 일반 학문의 교과서까지 출판하여 교육사업에 앞장섰다. 또한 박해로 인하여 1858년에 철거 되었던 빈찌(Vĩnh Trị) 신학교를 대체하여, 1897년에 북서부 지역 교구 전체 성소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가 써끼엔 성당 부지 내에 마련되어 1934년 하노이로 이사 할 때까지, 40년 동안 대신학교가 운영 되어, 수많은 사제와 주교를 배출하는 고귀한 임무를 완수해 왔다. 그러한 영향에 의해서인지 써끼엔 성당은 2분의 성인, 사제 베드로 쯩반티(Phê-rô Trương Văn Thi)교리교사 베드로 쯩반드엉(Phê-rô Trương Văn Đường)을 배출하였다. 2분의 성인뿐만 아니라 27명의 순교자들이 써끼엔 성당에서 활동하였다.

 

이처럼 써끼엔 성당은 서북부 지역의 종교 행정 수도였을뿐만 아니라,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20081217일 써끼엔 성당은 요셉 응오꽝끼엣(Giu-se Ngô Quang Kiệt) 대주교에 의해 하노이 대교구의 순교자 성당으로 승격되었고, 2010624, 교황청은 써끼엔 성당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여 순례 성지로 승격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써끼엔 성당은 순례성지로 거듭나기 위하여, 대대적인 보수와 복원 공사를 마치고, 현재 베트남 순교자들의 유물을 전시하고 박해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장을 운영하면서,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피정 시설과 순례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북부 지역 순례에 나설 때에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순례지가 바로 써끼엔 성당이다.

[노동현장소식]

 

<다시는>

- 산재유가족들의 작은 전시회

 

 

지난 114일부터 13, 서울의 성분도 은혜의 뜰에서 산재 유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다시는 일 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모두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기획된 이 전시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지난 한 해 동안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가득 마당에 쏟아져 내리는 11월 초, 성분도 은혜의 뜰 앞마당에는 기획의 첫 번째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그러나 지금은 그립고 간절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함께 찍은 가족사진, 취미였던 퍼즐과 피규어, 점심으로 먹으려던 컵라면, 어릴 때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일상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 한 조각들이 모여있는 그곳은, 이미 추억의 주인공의 부재를 알고 있는 저에게는 참으로 시린 공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공간인 1층에는 <싸우는 사람들 : 어느 날 갑자기. 사고 이후 180도 달라진 남은 이들의 일상.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세상과 싸우고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들의 마음 풍경>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천장에 걸린 천들을 헤치고 나면 하나의 글씨를 마주하게 됩니다. 작은 글씨로 새겨진 없다라는 단 하나의 단어는 제 심장이 덜컥.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무엇이 없다는 것일까요? 그저 단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우주가, 가정이, 울타리가, 어쩌면 사회의 부재는 아닐까요?

가장 넓은 공간인 1층에는 유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 죽음의 책임을 묻는 몸부림의 과정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투쟁의 시간과 그 시간을 기억하는 유가족들의 마음, 그리고 그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낸 여러 작품이 짧은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성분도 은혜의 뜰 2층에는 작은 기도실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조용히 주님과 만나 기도하던 공간입니다. 기도실 문을 열자 빼곡하게 적혀있는 이름들이 보입니다. 한순간에 스러져 간 수많은 이름. 이곳에 적힌 이름들이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참으로 먹먹했습니다. 2층의 공간은 <우리는 : 다시는 일 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남은 우리가 할 일. 기억과 다짐>이라는 의미로 꾸며졌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또다시 죽어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일 것입니다.

 

하루 평균 6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일터의 환경은 노동자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폭염과 폭우, 재난 상황에서도 일해야 하고,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아도 일을 해야 하고,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1조의 기본원칙을 어기고 일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산재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산재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도 있을 테지만, 어느새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산재 유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치유를 위함도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함께 모여 아픔을 나누기도 하고 싸움의 과정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감정을 갈무리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고 일상이 송두리째 뒤바뀐 유가족들과 이러한 일들을 함께 고민하는 활동가들은 일상을 유지하느라 일상을 빼앗아갈 산재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싸우고 있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노동 환경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며 법과 제도를 바꾸려고 싸우는 이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한 걸음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는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작은 변화를 위해 평생을 싸웠고, 누군가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싸웠던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문제도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모두 우리의 문제 그리고 나의 문제입니다. 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하여 주변을 살피고 함께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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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시선 ]

 

 

<연대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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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식 (라파엘) / 사진가

 

 

[ 지난달 한 일 ]

 

스텔라데이지호 선전전 및 공판 (11/23)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의 2번째 공판 준비기일에 부산지법 앞에서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2차 심해 수색이 절실하다"라고 촉구하며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피케팅 선전전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18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증인, 참고인들의 진술 내용에 대해 피고인들이 대부분 부동의했기 때문에 증인 신청 인원수가 많다고 합니다. 18명 증인을 법정으로 불러 심문하려면 공판기일을 여러 차례 잡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판사도 난감해하는 상황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규명되지 않았으며 선박사고의 원인 조사와 선사의 과실에 대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희생자 가족분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끝까지 싸워 승리한 선례를 만들어 내고 싶다."라는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의 영육이 평안할 수 있도록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노동 사목 이주노동자 공동체 4분기 노동법 교육 (11/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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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일 2 - 이주노동자공동체 4분기 노동법 교육 사진 2.jpg

이번 해 2022년도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법 교육에 처음으로 산재법에 대하여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2022년도 5월에 입사한 노동안전팀장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대해 교육을 담당하였고, 베트남 공동체는 투항 수녀가 담당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힘든 일을 할 때 흔히 쓰이는 단어인 3D (어렵고, 위험하고, 환경이 좋지 않은) 업종에 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다 심각하게 다쳐도 일부 기업이나 회사 측은 다친 사실을 알리지 않고 급하게 다친 곳만 일시적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후유증에 대한 통원치료는 모두 이주노동자들의 부담이 되는 셈입니다. 산재보상에 대해 지식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하여 전주현 노동안전팀장이 이해하기 쉽게 교육내용을 만들었고 이후 매년 4분기 교육마다 웅상, 양산, 부산가톨릭 영어 공동체의 산재 교육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JOC 위령미사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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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다가오고, 이번 연도에 열린 JOC 위령미사에도 많은 선배님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미사를 진행하며 가톨릭노동장년회 선배님 중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가신 분들을 위하여 위령기도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하얀 백합화를 헌화하며 한국 역사 속에서 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신 선배님들을 생각하며 진행하는 미사는 현재 가톨릭 노동상담소에서 몸을 담고 있는 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후배들의 풋풋한 자기소개와 인사는 선배님들이 부모님의 미소를 자아 나게 하였습니다. 다음 달 바자울 미사를 기다리며 오늘 또한 선배님들의 정신을 잊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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