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연중 제3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김해 시장의 장날은 2일과 7일이다. 내일이면 장날이다. 내 고향 밀양도 장날이 2일과 7일이다. 촌놈이라 그런지 장날이 되면, 살 것이 없어도 괜히 장에 가고 싶어진다. 오늘 제1독서의 요나 예언자처럼, 나도 김해 장날, 장터 한복판으로 제의를 다 차려 입고 나가 « 김해 사람들아, 회개하라 ! »라고 하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아니 제의를 입고 장에 나가려고 하는 나를 본당 회장님이든, 수녀님들이든, 사무장이든 뜯어 말리려고 할 것이다. 요나는 때와 장소가 잘 맞아떨어졌기에 니네베 사람들에게 « 회개하라 »고 부르짖을 수 있었고, 니네베 사람들 역시 때와 장소가 딱 맞아떨어졌기에 요나를 만났고, 회개할 수 있었다.
 
사람은 때를 잘 타고 나야 하고, 잘 나가는 사람은 때를 잘 만난 사람이라고 골잘 말한다. 그렇지만, 참으로 대단한 사람은 자기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요, 자기의 때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때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장소도 중요하다. 이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4복음서 모두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듯, 예수께서는 요한이 잡힌 뒤에 당신의 길을 여셨다. 당신의 길을 여는 첫 선언은 «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믿고 회개하시오 »(마르 1,15)였고, 이 선언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말씀은 오래 전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로 당신을 모세 앞에 드러내신 야훼 하느님을 떠올리게 한다. 야훼 하느님이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때는 백성이 고난을 겪는 때요, 울부짖는 때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때가 찼다는 이 ‘때’ 또한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으며 울부짖는 때였다.
«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에 » 라는 때는 바른 말을 하면 잡혀 가던 때였다. 요한은 바른 말을 했기에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결국 목이 잘려나갔다. 2천년 전 한국에서 6000여 km 떨어진 유다라는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 땅에서도 일어났다. 이 땅에서도 바른 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 가기도 했고, 잡혀가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끌려 갔다 돌아온 사람들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거나, 팔 다리를 잃거나, 장애를 겪기도 했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복음을 맨 먼저 갈릴래아에서 선포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곧 구원의 삶의 방식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다. 갈릴래아는 이스라엘 최북단의 변방지역이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래아를 두고 대단히 더러운 곳, 이방의 나라와 살을 섞고 우상숭배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곳, 이방인들의 지역이라고 멸시했다. 게다가 « 갈릴래아 사람들 »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견과 경멸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이었다. 마치 ‘경상도 보리문디’, ‘전라도 깽깽이’ 식으로, 한 지역을 폄하하는 정도를 넘어 못 배우고 무식한, 그래서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죄인들이라는 뜻을 배태胚胎하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의 땅, 그늘진 한의 땅, 가난해서 눈물의 땅이요, 서러워서 한의 땅이요, 죄가 많아 소외되고 잊혀져 버린 땅이 갈릴래아였다. 모두가 포기했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죽어지내던 그런 어둠의 땅이 갈릴래아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가장 더럽고 어두운 갈릴래아에서 구원의 첫 삽을 뜨셨다. 몸소 갈릴래아 사람으로 불리길 원하시며 그 바닥 제일 밑으로 내려가셨다. 배가 고파 찾아오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고, 아무도 고쳐주지 않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주셨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께서 베푸셨던 33가지의 기적 중에 24번이 바로 이 갈릴래아에서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께서 갈릴래아를 당신의 구원사업의 첫번째 장소로 택하셨듯, 이 땅의 갈릴래아,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는 이들, 어느 누구도 모를 눈물 속에 사는 이들과 말끔히 지워내 버리고 싶은 상처를 입고 한숨만 내쉬며 살아도 사는 것같이 않게 사는 이들이 있는 곳, 한마디로 변두리, 어두운 곳을 교회가 먼저 찾아가야 하고,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연대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스승, 교부敎父라고 불리는 모든 주교님들뿐만 아니라, 사제, 수도자,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engagement à la société)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빛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으며, 하느님을 만났고,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통해 빛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으며, 하느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기까지 하고 있듯,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계속되는 거부권 행사로 무조건 거부당하며, 심지어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때, 또 다른 요한이 잡혀가고 있는 이 때에는 예수님의 구원의 도구이자,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빛이 되어주어야 하고, 희망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기도하라고 나를 다그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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