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소개

◈ 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김해시 동상동 727-5 소재. 1959년 10월 21일 진영 본당의 삼방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이다.

제 1 장 김해본당의 설립

 

   제1절 . 김해지역의 천주교 전래

김해지역의 전교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확실하지 못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화를 입게 되자 그의 조카였던 낙하 이학규는 지금의 삼방동 골짜기 예암골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24년간 살면서 후계자 양성과 신앙전수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에 상덕공소가 1899년에 설립되어 명례본당 소속으로 있다 1905년에는 마산본당 소속으로 1935년에 진영본당이 설립되면서 진영 본당소속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김해에 씨앗이 확고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순교자 조씨(석빈, 석증) 형제가 순교하자 이들의 막내동생인 석기가 밀양 명례리로 피신하여 그곳에 숨어서 생활을 하던중 장녀를 괴내(현재의 삼방동)의 유성복에게로 출가시킨 이후이다.

1898년 1월 밀양의 명례 본당시기에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에 의하여 김해지역의 전교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11년경부터 공소가 설립되어 활발한 전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제2절. 삼방(괴내)공소

1939년경에는 초선대, 식만, 상덕, 선암, 주촌, 울만 입소지역에 흩어져 살던 신자들이 삼방공소로 모여 성사를 보았으며 당시에는 남녀구분이 엄존하여 판공성사때도 남녀가 따로 따로 방에 모여 찰고를 받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공소건물은 없었고 처음 공소예절은 유동댁의 집에서 하다가 후에는 허장의 조부가 살던 집을 공소로 사용 하였다.
 

   제3절. 향상회와 본당설립 기성회 창립

1911년 삼방공소를 시작으로 1944년까지 김해지역에는 삼방, 상덕, 울만, 입소, 정양, 초선대, 주촌 등 많은 공소가 설립되어 여러 신자들이 산재해 있었으나 당시 김해읍에는 신자가 없었다.

1945년에 회장 및 신자 35명이 향상회를 조직하여 교우 사망시에 장지 수행 및 연도 드리기 등 전교사업에 주력을 하였다. 본당 설립의 기성회는 향상회가 주축이 되어 김태호 신부님이 사용하시던 사제관 16평 건물로 추정되는 곳에서 1950년 3월 9일 본당을 설립하고 기성회는 각 공소의 회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헌신적인 활동을 하였다.

 

제 2 장 김해 성전 건립과 본당의 승격


   제1절. 성전터 마련과 제1차 성전 건립공사

김해는 옛가락국의 도읍지였고 여러 곳에 공소가 있었지만 읍내에는 공소는 물론 신자도 전혀 없었다. 이런 연유로 각공소 회장들은 합심하여 김해읍 중심가에 본당을 건립하고자 의견일치를 보고 1950년 10월 30일 김해읍 동상구 2구 727번지(당시 소방대장 권성남의 소유)에 1,080평의 성당 터를 마련하였다. 그후 6여년간 40여만환을 모금하였으며 본당 건물 신축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당시 미국으로부터 지원되어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던 구호물자를 모우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금한 금액으로 진영본당 정삼규(요한) 신부는 1956년 9월 성당 신축공사에 착수하였다. 각 공소 신자들은 30여명씩 순번제로 도시락을 싸들고 성당터 조성에 힘을 모았다.

그런 희생 끝으로 1957년 12월이어서야 건평 65평의 교회를 지붕공사까지 끝낼 수 있었으나 미완성이었다. 그후 2년동안 내부공사를 하며 교우들과 기성회 임원들은 신부를 맞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였다.
 

   제2절. 사라호 태풍과 본당 설립

마루바닥이 거의 완성되어 가던 1959년 9월 17일 추석 전, 사라호 태풍이 내습하여 김해일대는 황무지가 되었으며 3년간에 걸친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교회 건물도 절반 이상이 무너져 버려 재건축을 하지 않으면 않을 정도였다. 또한 많은 신자들의 가정에도 엄청난 재난을 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는 밀양본당 김태호(알로이시오)신부를 1959년 10월 20일자로 김해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삼방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주보성인을 “성모 무염 시태(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로 정하고 김해본당의 고유번호를 B17로 정하였다.
 

   제3절. 본당 성전 복구공사

사라호 태풍에 의해서 절반이상이 무너져 버린 교회를 보고 신자들이 실망하며 “이래서야 성탄 때 미사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하고 질문하자 이에 김태호 신부는 강한 어조로 “마루대신 가마니라도 깔고 그리고 가설 제대에서라도 반드시 미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하며 의지를 굳혔다.

그후 사제와 신자들의 눈물 어린 노력은 계속되었고 1959년 12월 24일, 드디어 성당 복구 공사를 완료하였고 이튿날 11시에 성탄 대축일 미사를 김해 본당의 첫 미사로 집전할 수 있었다.

 

제3장. 성전 재건축
1964년 9월 이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었고, 1980년 11월 기존의 수녀원을 철거하고 공사를 진행하여 1981년 6월 새로운 수녀원을 완공하였다. 1984년 5월 성당을 증축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8월에 건평 147평의 2층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성당 축성식 및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교우수의 증가로 본당 분할의 필요성이 점차 더해갔다. 그리하여 1990년 7월에 장유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1995년 2월에는 활천 본당을 분리시켰다. 이후 2001년 임호 본당, 2004년 9월 17일 삼계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2011년 1월 12일 연지 본당을 분리시키고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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