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 연중 제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 구약 성경을 통틀어 하느님의 부르심을 마치 사전처럼 정의해 놓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성경은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뿐이다. 부르심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가 오늘 제1독서를 통해서 들었던 사무엘 이야기다. 이 외에도 부르심과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적잖게 나온다. 예언자들을 부르시는 하느님,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등. 이러한 이야기들의 원형이 바로 창조 이야기(창세 1,1-2,25)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의 우주시원론宇宙始原論이다. 세상 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는 신앙을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은 야훼는 창조주이시라는 신앙을 받아들인다. 이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세상 만물을 “생겨라, 존재하여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창조하신다. 이 말씀이 바로 다름 아닌 ‘존재에로의 부르심’이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로의 부르심’을 받고 존재하며,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삶 자체가 바로 다름 아닌 하느님의 존재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들이 처해 있는 모든 상황, 곧 우리의 직업, 직장, 직분, 우리들 삶의 자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의 자리이며, 우리의 응답의 자리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한가운데가 성화聖化의 장場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은 교회를 통한 부르심으로 구체화되고, 온전하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

        교회를 통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신부가 되는 것이거나, 수도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 가건, 우리 모두는 성인 성녀가 되기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거룩한 사람이 되시오»라고 하셨다. 거룩한 사람, 곧 성인, 성녀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과 하느님이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양다리를 걸치지 않는 사람들이 성인 성녀다.  성인 성녀들은 하느님께 봉사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 결코 중단 없이 충실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흔히 성인 성녀들이라고 하면, 딴 세상의 인물로 여기고, 우리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초인간적인 분들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그러나 성인 성녀들도 천사가 아니었던 만큼, 때로는 인간의 약점으로 번민도 하였고 때로는 수많은 유혹도 당하였던 인물들이었다.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 많고도 많은 실수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에 반해 우리는 쉽게 실망하거나 낙담한다는 것이다. 낙담과 실망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심을 믿지 않고 도외시하는 불신앙의 행위이다. 어떠한 죄나 어떠한 모독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언제나 죄를 용서하시는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마태 12,31)고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존재에로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를 통해서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하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바로 우리들의 정체요, 우리들의 신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무슨 일을 해야 그분의 제자로서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인지를 분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오늘 제 1독서의 사무엘과 같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식별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살아야 할 도리이다. 돈, 권력, 명예,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적어도 재물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을 위해 아내나, 남편을, 부모나 자식을, 형제와 이웃을 이용하고, 그들의 인격을 짓밟는 일은 분명, 그분의 제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생명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대세를 따른답시고, 죽음의 길을 향해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도 않고, 마냥 달려가는 것, 정의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불의를 못 본 체하며,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고, 세상의 아픔과 눈물에 무관심해 하며, 살아 있는 자체, 생명 자체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이 사는 것, 이 또한 그분의 제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하느님의 전능과 인자하심을 신뢰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우리의 잘못을 슬퍼하며 참회하면서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걷는다면 우리 모두는 성인 성녀가 될 수 있다. 성인이란 끊임없이 노력하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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