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체험
예수님의 부활은 생물학적으로 또는 의학적으로 입증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깨달음의 사건이고 신앙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부활을 깨닫고 믿게 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깨닫고 믿게되는 것은 그것이 체험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분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게 된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곧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체험은 몇몇 사람이 비밀스럽게 부활하신 분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체험은 복음서에 남겨져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원초적 체험은 지금 여기에서도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부활의 체험을 불러일으킵니다. 작게는 우리들의 마음 안에서 주님 부활이 체험되는가 하면,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위대한 성인들의 체험을 통해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부활은 체험으로 이해되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신앙으로 전해지는 사건입니다. 지난 주 부활대축일 이후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 계속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체험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의 체험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장면을 묵상해보면 첫번째 성목요일 밤의 마지막 만찬이 우리 마음 안에 떠오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향해가던 제자들과 동행하십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제자들은 그분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분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바로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에서도 제자들은 티베리아스 호수가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먹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첫번째 성목요일 밤 만찬의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성목요일밤의 만찬, 바로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 손의 못자국을 보여주시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십니다. 그제서야 토마스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곳은 바로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 십자가의 상처 속이었습니다. 모두가 비껴가려고 하는 그곳, 모두가 넘어가려고 하는 그곳, 그 아픔과 상처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주님 십자가 고통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다른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 때,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성금요일의 고통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수난의 성금요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첫번째 부활절의 아침이 밝기 전, 아직 어두울 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모두가 배신하고 외면하고 도망갔던 바로 그 자리로 마리아 막달레나는 찾아갑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가장 허무한 사건이요 무덤은 가장 쓸쓸한 자리이지만, 우리가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할 때 오히려 부활이 체험됩니다. 첫번째 성토요일의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무덤을 덮고 있던 성토요일 어둠 속으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자리는 성목요일 밤의 만찬 안에서, 성금요일의 당신 상처와 고통 안에서, 그리고 성토요일의 당신 무덤 앞에서 입니다. 주님의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 각자의 고통과 아픔을 견뎌내고 이겨낼 때, 그리고 끝까지 침묵과 어둠의 주님 곁을 지키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우리 역시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 역시 체험하는 사건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기를 청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