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을 허물어라

사순 제3주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이른바 성전정화사건에 대해 전해줍니다. 성전정화사건이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의 환전상들과 장사꾼들을 내쫓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유다교 성전의 종말을 고하시고, 당신이 바로 성전이심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성전에 대해 함께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영도 아래 이집트의 억압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머물게 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계약을 맺습니다.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의 징표로 하느님은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주십니다. 모세는 이 돌판을 궤에 넣어 보관하게 됩니다. 이 궤를 계약의 궤라고 부릅니다. 이 계약의 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금 여기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표지가 됩니다. 모세는 진영 한 가운데 천막을 치고 그 속에 계약의 궤를 넣어두었습니다. 이 천막을 만남의 천막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성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동할 때, 하느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 천막을 비추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이 천막 안에서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천막이야말로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이끄시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러, 다윗 임금이 계약의 궤를 자신의 성 안에 모셨습니다. 그로써 다윗은 하느님의 가문이 되었고,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 계약의 궤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방에는 회당을 지어 하느님 말씀을 들었고, 수도 예루살렘에는 성전을 두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성전은 허물어졌고, 성전 안에 모셔둔 계약의 궤 역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후에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사실 재건된 성전 안에는 계약의 궤를 모시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재건된 성전조차도 주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의 군사들에 의해 허물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우는 서쪽 벽만 남아있어, 유다인들이 그 벽에 머리를 치며 통곡과 탄식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미 하느님 현존의 자리가 아니라 장사꾼들의 집으로 변해버린 성전의 종말과 붕괴를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 현존하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고 당신을 드러내시는 장소는 어느 산, 어느 건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바로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시며, 주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현존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 이야말로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 자신이 바로 성전이심을 선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성전에 대해 묵상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성체성사로 주님과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4)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라면, 오늘 복음은 우리 자신 역시 정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 안에 환전상과 장사꾼들의 탐욕과 욕망 역시 정화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실 때 우리는 참다운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오늘 우리 자신이 정화되어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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