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령

복음서를 보면,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보듯이,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 주십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죽은 이를 되살려주시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또 다른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몰려드는 병자들을 경계하시고 그들과 거리를 두십니다. 군중을 피해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는가 하면, 군중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작은 배 위에서 그들을 가르치시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여러 차례 병자를 치유하신 후, 치유의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마귀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왜 치유받은 이들과 마귀들이 당신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셨는지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함구령은 치유와 구마의 참다운 의미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병고를 피할 수 없고, 나이들고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늙고 아프기 마련입니다. 물론 우리는 병고에서 치유되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 치유 받은 그들이 그 이후로 어떤 질병도 없이 살았던 것도 아니요 그들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지금의 병고가 지나간다고 해서 앞으로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질병의 고통에서 치유되는 것도 큰 은총이지만, 사람이 평생을 건강하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늙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도 은총이며, 지금 여기서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큰 은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치유와 구마의 참된 의미는 우리 육신이 늙어가고 병들어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 바로 참되고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고 늙어가는 것도 참으로 인생의 신비이며 그 신비 가운데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늙음과 병듦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손을 잡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은총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함구령은 당신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당신의 사명의 참다운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병을 고쳐주시고 빵을 많게하여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는 메시아를 거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칭송하고 우러러보는 왕을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하느님께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빵이나 명예와 위신이 아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과 포기, 희생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셨고, 죽음과 고통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치유받은 이들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군중의 마음이, 마귀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정체가 혹여 예수님의 참모습과 당신 사명의 참 의미를 오해하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마음이 육체의 건강과 물질의 풍요로움에만 머물러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경계하시고 우리와 거리를 두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치유와 구마의 참다운 의미를 묵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육체적 건강과 물질적 풍요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늙음과 병듬 가운데 하느님을 깨닫고, 고통과 희생 가운데서 드러나시는 하느님의 참다운 생명을 깨닫기를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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