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
복음서들을 읽어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온 삶에 함께 동반하시고 현존하십니다. 길을 걸어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 곁에 함께 계십니다.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에 숨어 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가장 뚜렷하고도 확실하게 만난 때는 “빵을 떼어 나눌 때” 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 곁에 계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빵을 떼어 나누는 일”에 초대하십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증언하듯이, 성목요일밤 주님의 최후 만찬을 계속해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 최후 만찬이 바로 예수님의 피로 하느님과 우리가 새롭게 맺는 계약이며,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시면서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전하고 주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성체와 성혈을 통해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지금 여기서부터 받는 것입니다. 실상 성체성사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자 정점이고, 미사야말로 교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곧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 구원의 은총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는 마술도 아니고 주술도 아니며, 더구나 자동판매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미사에 참여한다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이 한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체를 영한다고 해서 은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미사에 기계적으로 형식적으로 참여할 때, 우리의 영혼은 자라지 못합니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미사 참여는 그 자체로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준비되고 예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총의 품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미사 역시 준비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날 독서와 복음은 여러 차례 읽어보아야 합니다. 여러 번 읽으면 더 잘 들립니다.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묵상해야 합니다. 더 나가서 미사 중에 사제가 하는 말 역시 잘 들어야 합니다. 미사 경본은 거의 성경 구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사 경문을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침묵할 때는 침묵하고 묵상할 때는 묵상해야 합니다. 미사 중에 우리는 말씀의 전례가 마무리될 때 그리고 영성체 후에는 침묵 속에서 묵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을 영하고 나서 우리는 침묵 속에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말라빠진 꽃에게는 햇볕도 소용이 없습니다. 땅이 자갈 투성이이면 물을 주어도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싱싱한 식물은 햇볕을 쪼일 때 더욱 튼튼해집니다. 기름진 땅은 빗물을 머금어 씨앗을 싹 틔어 자라게 합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혼자서 사는 것은 없습니다. 만물이 만남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만남을 참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만남에서 우정이 싹트고 사랑이 자라납니다.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만남 속에서 삼라만상이 자라고 꽃피고 열매맺습니다. 성체성사와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만남의 자리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자라고 주님의 은총이 우리 위에 내립니다. 준비되고 예비된 만남이 우리를 성장시켜 줍니다. 오늘 성체와 성혈의 은총이 우리 위에 내리기 함께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