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568호 2019.11.10 
글쓴이 이미영 체칠리아 

나의 마지막 수트.jpg


"나의 마지막 수트" - 잊는다는 것과 잊혀진다는 것은
 

이미영 체칠리아 /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ecil-e@hanmail.net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것은 기억의 창고 문이 닫혀있는 것이다. 그 문을 열기까지는 오래 걸릴 수도,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이다. 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수트 한 벌. 그것은 70년 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다. 유대계 재단사인 아브라함은 폴란드에서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온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자신의 불편한 다리를 ‘추레스’라 부르며 오랜 친구처럼 여긴다.
   영화는 아브라함이 친구에게 줄 수트 한 벌을 들고 절뚝이며 폴란드로 향하는 고단한 여정을 담았다. 여행길에 떠오르는, 나치의 잔혹함으로 짓밟힌 청춘과 처참한 가족들의 죽음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데려오지만, 그를 살렸던 친구처럼 아브라함의 ‘추레스’가 되어 주는 따뜻한 이들이 있다. “독일 땅을 절대 밟지 않겠다.”는 그에게 자신의 옷을 깔아주고 발을 딛게 하는 독일인 인류학자. 선대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그녀의 진심이 아브라함의 얼음장 같은 증오를 녹인다.

   그는 자신을 간호하던 간호사의 동행으로 도착지까지 가며 점차 자신이 회복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서로 닮은 모습으로 늙은 친구. 두 친구의 깊은 포옹과 어깨를 감싸며 내려놓는 한 마디는 모두에게 차려주는 희망의 국밥 한 그릇이다.

   감독은 순탄치 않은 여정의 끝자락에 따뜻한 인간애로 관계회복의 메시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가만히 묻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서 내가 잊혀지듯이 나도 소중한 무엇을 문이 닫힌 창고 속에 넣어두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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