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숙성 와인처럼

가톨릭부산 2021.09.15 11:02 조회 수 : 31

호수 2669호 2021.09.19 
글쓴이 윤경일 아오스딩 
장기 숙성 와인처럼

 
윤경일 아오스딩 / 좌동성당·의료인
ykikhk@hanmail.net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와인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3학년 종교학 시험 때 일이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보여주신 포도주 기적에 관해 영적 의미를 논하라는 문제에서 바이런은 모든 종교학 교수들로부터 만장일치로 만점을 받았다. 답은 이러하다. “물이 창조주 주인을 만나더니 얼굴을 붉혔도다.”  
 
   코로나 상황으로 홈 술이 대세가 되면서 와인이 대중화되고 있다. 다채로운 향과 산미, 탄닌, 당도, 미네랄리티, 바디감, 구조감 등 와인마다 특유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이 풍미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산화 과정에서 형성된다. 오크통에 저장되었다가 병입된 와인은 코르크 마개로 막혀 있지만 실제로는 코르크 입자 사이로 공기가 미세하게 드나들면서 와인 성분을 변화시킨다. 
 
   와인은 장기 숙성용일수록 십 년 이상 산화를 거치면서 제맛을 내는데, 이것은 인생에서 도전과 성공, 좌절과 분노, 포기와 희망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연상해 볼 수 있겠다.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기술이 투박한 운동선수가 피나는 노력 끝에 일류선수로 태어나는 상황을 상정해 본다. 이는 떫고 거칠기만 하던 와인의 탄닌 성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럽고 섬세한 맛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비견해 볼 수 있겠다.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는 아름다운 결실은 없다. 공중을 나는 새도 한때는 둥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설픈 날갯짓을 했을 것이다. 지나온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예상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경험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녹여내면서 성장의 열쇠를 쥐게 된다. 
 
   구두쇠처럼 돈을 벌던 사람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어놓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일까? 세상풍파를 겪다 보면 자신보다 점차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헌신의 가치를 우선시하게 되면서 이타주의가 자라게 된다. 이는 성숙한 인생 단계로서 숙성된 와인의 맛과 향이 어우러진 복합미에 견주어 볼 수 있겠다. ‘숙성’이나 ‘성숙’은 단어의 음절만 앞뒤가 바뀌었지 같은 말이지 않던가.
 
   인생 후반기가 되면 성공에 대한 미련, 젊음에 대한 선망, 잠재된 욕망으로부터 초연해진다.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잠언 16,31) 이 의로운 길이란 가정과 사회에 성숙한 연장자가 되고, 젊은이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고, 미래 세대에게 지혜의 창고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길을 걷노라면 숙성된 와인에서 피어오르는 깊고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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